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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나를 의심하라

 

 

분당 인문고전 모임에서 만난 한 선생의 가훈은 '나를 의심하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토론을 할 때마다 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의심이 가는 대목은 메모해 뒀다가 뒤풀이 자리에서라도 꼭 묻는다. 처음에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으면서 그의 가훈 그대로 나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확히는 내가 말한 것들, 내 사고, 내 시각.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생각은 맞는 것인가, 그 반대 지점의 생각은 엉터리이기만 한 것인가. 그 선생의 영향으로 마치 초침이 된 느낌이다. 누구의 말이나 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옳든 그르든 참고한다.

 

그러나 이 습관은 이따금씩 흐느적거린다. 어떤 일방의 현상이나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것이다. 지난 4·7 보궐 선거에서 오점 많은 국민의힘당 후보의 큰 차이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나자신의 분석을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예술 창작에서 말하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만큼 나를 의심하라가 깊이 각인돼 있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 국면인 이즈음 거리두기가 이루어져 다행이다. 각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다. 각 캠프 사람들도 헤아린다. 이 뿐 아니라 지지하는 1인 미디어들의 논리 구조가 무엇인지도 들여다본다. 대충 윤곽이 잡혔다. 가장 큰 특징은 민주당의 정신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버금가는 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차선이 있고, 차선과 최악의 중간이 있고, 뽑아서는 안 되는 차악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판단 근거는 도덕성과 실적, 정책 등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도덕성은 보통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보다 미치지 못하면 부적격인 것이다.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는 필히 불행해진다. 후보 당시 전과 11범이었던 이명박이 아주 명쾌한 사례 아닌가. 실적은 사실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후보들이 동일 위치에서 일한 바가 없어 상대비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보들이 주장하는 실적을 객관적 데이터로 치환하기가 어려워 참고하는데 그쳤다. 정책의 경우 실현 가능성을 최우선 판단 근거로 정했다. 이 기준은 생각보다 명료해서 좋았다.

 

그러나 이 판단도 의심해야 한다. 하나의 기준을 틀 안에 가둬두고 절대화하면 나머지 것들이 사장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전체주의가 실은 이성을 절대화한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성에 포함되지 못한 개별자, 비개념적인 것들이 거꾸로 전체주의를 극복하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이성에 대한 조사이자 비이성에 대한 헌사일 터이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의심하자. 그 후보가 포괄하는 이성을 의심하자. 그 이성 밖 개념화되지 못한 것들을 애정하자. 무엇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나를 의심하자.

 

유하의 짧은 시 '오징어'는 여기에 잘 들어맞는 정신일 것이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오징어는 빛(집어등)을 쫓지만 그것은 죽음이다. 그 빛을 자본주의의 소비로 대입하면 소비 사회 인간의 비극이 드러난다. 그 빛을 대선 후보로 대입하면 유권자의 확증편향이 정치의 죽음, 공동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를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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