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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의 '생명'] 공정이란 존엄의 인정이자, 배려다

 

코로나 사태가 델타 변이 등의 등장으로 장기화 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 지고 있다.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편, 오히려 이 시기에 부유한 이들은 더욱 부유해졌다는 뉴스도 있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고, 각 개인의 다양한 삶이 인정되는 시대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계층 사람이 죽음을 쉽게 겪는 사회적 다양함이란 공정한 것 같지 않다. 아니 인간이 평등한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 사회가 결코 평등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공정한 과정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그녀가 고액을 지불해 비행기 일등석에 타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불공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는 인간 사회에서 평등함이 자리 잡으려면 공정해야 한다. 일등석과 일반석을 인정하듯이 이때의 공정이란 다양성의 존중이다.

 

한편 서로 다른 차이로 생겨나는 다양성의 존중은 무엇에 기반하는가 생각해 본다면 각 존재의 존엄성이다. 서로 다른 우리 모두 존엄한 존재로서 존중될 때 평등하고, 공정함이 자리잡는다. 공정이란 말이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은 채 단지 표피적으로 똑같이 취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면 오히려 진정한 그 뜻을 잃는 셈이다.

 

존엄에 근거한 차이의 존중, 그것이 공정과 평등사회의 기본이라면, 존중이 표현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 현실이 더욱더 갈라놓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하고 평등한 관계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다. 배려는 강자만의 몫이거나 약자에 대한 시혜가 아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배려라는 것은 곧 강자나 약자 양측 모두의 배려가 요구됨을 의미한다. 최근 경기 김포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하던 40대 점주가 '조합원 갑질'에 대한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한 마음 아픈 사례처럼 배려는 상호적이며, 공정 사회의 기본 가치다.

 

아쉽게도 다양성의 존중 관계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자본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다. 개인의 욕망 만족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와 각 개인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와의 결합이란 결국 '공유지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최악의 조합이 된다.

 

민주라는 이름 속에 개인의 욕망이 존중되어 공익보다는 사익이, 더 나아가 그런 사욕이 민주의 허울 속에 서로 모여 결국 집단 욕망이 되어 사회를 휘젓고 다니게 될 뿐이다. 공익이 우선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개인이나 이해집단 간의 욕망의 갈등 요인이자, 야수들의 허울 좋은 자유와 권력을 보장해주는 제도에 불과하다. 다양성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 가는 문화에 불과하다.공정할 때 차이는 존중된다. 차이가 차별이 되면 폭력이 자리 잡는다. 폭력이란 관계의 왜곡이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절되고 왜곡되어 소외된 관계로부터 너와 내가 서로 존중하는 생명의 관계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이며, 그것이 진정한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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