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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②빈센트 반 고흐와 아를

 

한 남자가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다. 그 남자는 그만 자기의 귓불을 싹둑 자르고 만다. 이 잔인한 남자는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였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브. 일요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마을은 인적이 끊겼다. 창녀촌과 우체국만은 예외였다. 이 시절 우체부는 일요일도 근무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고흐는 환청과 환각으로 몸부림쳤다. 그때 우체부가 동생 테오의 편지를 들고 왔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 있는 고흐의 노란집이었다.

 

비극! 하지만 아를은 고흐에게 영혼의 문이었다. 고흐가 아를에 정착한 것은 순전한 우연. 2년간의 파리생활을 접고 고흐는 남쪽으로 햇빛을 찾아 떠났다. 번잡한 도시생활과 북쪽지방의 살벌한 날씨에 짓눌려 따뜻한 태양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새로운 화법을 완성하기 위해 프로방스의 빛과 색깔들이 필요했다. 따라서 마르세유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고 아닌 사고가 났다. 아를에 반하고 말았다. 결국 마르세유를 배신해야 했다. 아를의 농촌은 고흐에게 필요한 것을 다 줄 것만 같았다.

 

고흐가 도착한 건 2월. 엄동설한이었다. 그러나 곧 포근한 봄이 왔다. 고흐는 온통 헤집고 다녔고, 아를의 다양한 풍경을 통해 그림을 살찌울 영감을 얻었다. 아를의 한낮에 매혹당한 그. 정오의 태양 아래 그림 속에 흠뻑 빠졌고, 집에서는 조명을 찾았다. 프로방스의 빛과 색깔을 조합해 일본풍의 판화를 개발해야겠다는 야망도 가졌다. 이 모두를 실현하기에 아를은 최상이었다. 여름 시즌 그는 랑글루아 다리(Pont de Langlois)를 제외하고는 꽃이 핀 일본풍의 나무 그림들과, 추수하는 장면을 내내 그렸다. 화가 고흐를 가장 빛나게 하는 일 막이었다. 444일간 300점이 넘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고흐의 환상적 파트너는 진정 아를이었다.

 

매혹적인 원형경기장 광장의 저녁 카페(Le café le soir), 트랭크타유 다리의 계단(L’escalier du pont de Trinquetaille), 론(Rhône) 부두의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 라마르틴 광장의 노란집, 미레유 거리의 낡은 풍차 오두막, 리스(Lices) 거리의 공원, 랑글루아 다리(반 고흐 다리)는 모두 고흐가 그린 아를의 수려한 경치다.

 

하지만 아를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바위에 부서지는 론 강과 어우러진 역사문화 유적지는 장광 그 자체다. 기원전 800년경 리구리아인의 도착, 페니키아인들과의 무역, 로마인들의 정복은 아를을 웅장한 도시로 만들었다. 로마시대의 광장, 사원, 극장, 원형경기장, 공동목욕탕.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를은 이처럼 자연과 역사문화가 어우러진 완벽한 도시다. 고흐의 유채색이 그리운 날 아를로 떠난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뜻밖의 풍경들도 맛보게 될 것이다. 고대, 중세, 현대가 어우러진 아를의 여행객. 설령 연인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한들 무엇이 부족하리. 최상의 순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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