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4.8℃
  • 맑음강릉 30.8℃
  • 맑음서울 25.3℃
  • 맑음대전 27.3℃
  • 맑음대구 29.8℃
  • 맑음울산 27.1℃
  • 맑음광주 27.6℃
  • 맑음부산 22.1℃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6.2℃
  • 맑음강화 21.5℃
  • 맑음보은 26.4℃
  • 맑음금산 26.9℃
  • 맑음강진군 24.4℃
  • 맑음경주시 29.4℃
  • 맑음거제 23.6℃
기상청 제공

[안휘의 시시비비] ‘왕(王) 놀이’가 기가 막혀

  • 안휘
  • 등록 2021.10.06 06:00:00
  • 13면

 

 

지금은 다리 밑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돼버린 장기(將棋)의 유래는 꽤 깊어요. 장기 말 중 상(象) 때문에 나온, 고대 인도의 한 왕비가 전쟁에 빠진 왕을 잡아두려고 고안해낸 놀이라는 재미있는 설이 있지요. 그러나 양편 장군 말의 글씨가 초(楚), 한(漢)인 걸로 보아서는 고대 중국 한나라(BC202~AD220년) 대에서 유래했다는 추정이 합리적일 거예요.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징거 2세가 1973년에 펴낸 ‘제왕적 대통령제(The Imperial Presidency)’는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시끄럽던 닉슨 행정부의 막강한 권력을 묘사한 책이에요. 이 책은 ‘3권분립’의 정신을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하는 데 따른 폐해를 꼬집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아마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 가장 많이 쏟아져 나왔을 거예요.

 

촛불 민심으로 표출된 여러 시대정신 중에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 개혁과제는 아직도 미완의 숙제예요. 대통령이 나라의 온갖 일들을 다 들여다보고 좌지우지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 구조는 현대사회와는 전혀 맞지 않아요.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분산하자는 주장은 단지 권력 구조 혁신의 목표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는 국가운영의 효율성 문제와도 직결된 문제랍니다.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향해 달려가는 여야의 대결 국면에서 희한하게도 ‘왕(王) 놀이’가 횡행하는군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저 말이 나오지 않네요. 대장동 의혹이 대선전 최대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야 대선 후보들 사이에 함부로 날아다니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막말 험구가 정치 혐오증을 키우고 있어요.

 

아마도 명쾌한 용어로 유권자의 기억에 남도록 하기 위해서이겠으나 동원하는 언어가 금도(襟度)를 너무 벗어나는 중이에요. 봉고파직(封庫罷職)이니 위리안치(圍籬安置)니 하는 말은 옛날 야만 시대에 왕들이 즐겨 쓰던 고약한 독재적 용어들이에요. 그저 웃어넘겨도 될 듯하지만, 민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공직 선거판에서 그런 언어는 다시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손바닥에 아예 왕(王)자를 써서 다니는 후보는 또 뭔가요? 이건 정말 불편하네요. 겉으로는 ‘대통령’이 되겠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속으로 무소불위의 왕 노릇 한번 해보겠다는 심보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번 대선에서는 대통령의 권력분산 이야기가 확실하게 나와야 해요. ‘개헌’ 핑계 좀 대지 말고 만기친람 구조부터 혁파할 대안부터 내놓으세요. 왕(우두머리)만 살면 되는 장기판 선거가 웬 말인가요? 20대 대통령을 ‘왕’처럼 군림하려는 구시대적 인물로 뽑아 올릴 참인가요? 이젠 부디 제대로 된 대통령을 선출해서 우리도 시대에 맞는 선진 민주주의 좀 해보자고요. 뜬금없는 ‘왕(王) 놀이’ 따위는 제발 멈춰주세요.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