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3년 여름, 500mm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지는 와중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14명의 사망자를 낳은 충북 청주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관리 시스템 부재가 빚은 인재였다.
배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았고, 출입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사고로 차량 17대가 고립됐고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전국 지하차도 관리 실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미호강 임시제방, 배수펌프, 행정 부실 등 원인
참사 원인은 단순하지 않았다. 미호강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2~3분만에 6만 톤(t)의 강물이 순식간에 지하차도를 덮쳤다. 미호강은 차선 확장공사를 위해 기존 제방을 제거하고, 임시 제방을 쌓아둔 상태였다.
오송 지하차도는 총 길이 685m, 지하 터널 길이 436m, 높이 4.3m의 왕복 4차선 도로인 만큼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었다.
시간당 최대 83㎜의 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50㎝까지 침수를 감지하면 경보를 알리는 수위계, 분당 3톤의 빗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배수펌프도 4개가 그 시스템이다.
하지만 수위계의 경보를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고, 배수펌프에 전기를 공급하는 내·외부 배전반이 모두 고장나며 배수펌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사고 발생 전부터 관계 기관들은 재난을 충분히 예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나며 비판은 커졌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오전 4시 20분쯤 홍수주의보를 총리실, 행정안전부, 충청북도, 청주시 등 70여 곳에 통보했다. 이후 오전 6시 30쯤 수위가 계획홍수위 9.2m에 근접하자 관할 구청인 흥덕구청 건설과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 재차 경고했다.
흥덕구청은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받은 경고를 청주시청 안전정책과와 하천과에 전달했지만, 자체적인 현장 조치나 통제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13시간 전부터 현장 인근 도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음에도 차량 출입 통제 등 선제 대응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지하차도가 침수되기 40분 전까지도 모든 유관 기관에서 실질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사고 발생 직후인 오전 8시 49분경에도 청주시는 침수 여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버스 기사들에게 해당 지하차도로 우회 운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번 사고는 충분한 정보가 공유됐음에도 각 기관이 책임을 떠넘긴 채 현장 대응을 방기한 행정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
◇ 단순 설비 확충 아닌 '종합 안전 시스템' 필요
이처럼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관리 주체가 불명확했다는 점이다. 하천 관리 부서와 도로 관리 부서가 서로 책임을 넘기는 구조 속에서 재난 대비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경보, 통제, 배수 등 지하 공간 전체의 안전 관리가 분절적으로 운영됐고, 결국 재난 대응은 무력화됐다.
정부는 참사 이후 침수 위험 지하차도를 중심으로 안전 강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선 속도는 더진 상태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전국 침수 이력 지하차도 200여 곳 중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인력 의존 체계에 머물러 있다. 펌프가 설치된 지하차도는 다수 존재하지만 상당수는 자동 감시 체계나 원격 제어 기능이 없는 상태다.
경보와 출입 통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차량 진입을 자동으로 차단하거나 운전자에게 침수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여전히 많다. 안전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지자체마다 관리 기준이 제각각이라 일관된 안전 기준 적용도 어렵다.
소규모 지자체일수록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안전 점검과 설비 개선이 더욱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배수펌프 설치'와 같은 단순 설비 확충에만 집중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펌프가 설치돼 있어도 제때 작동하지 않거나 수동 점검에 의존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침수 감지, 경보 발령, 차량 진입 통제, 배수 자동화까지 포함하는 통합 안전 시스템 구축이나 지자체 부서 간 권한 분산 해소와 지하차도 관리 책임자 명확화, 표준화된 관리 매뉴얼 및 법제화 등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 "우리는 무엇을 점검했는가"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한국 여름철 재난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침수 위험이 예고된 공간에서 경보도 통제도 작동하지 않는 동안 차량은 그대로 고립됐다. 2년이 지난 지금, 전국 지하차도 200여 곳 중 절반 이상에서 같은 위험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펌프 한 대로 재난을 막을 수는 없다"며 "지하 공간 전체에 대한 종합적 안전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가 다시 시작되는 여름, 재난이 시작되는 것은 비가 내리는 순간이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부터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