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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③ 알베르 카뮈와 루르마랭

 

천재는 요절한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야기다. 1960년 1월 4일 새해 벽두, 에트랑제(이방인)의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46세 카뮈의 갑작스런 죽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지 겨우 3년째 되었을 때였다. 카뮈는 이날 루르마랭(Lourmarin)에서 프랑스 최고의 출판사 갈리마르 사장 부부와 함께 파리행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신의 장난인가. 그가 탄 자동차는 목적지에 거의 도달해 가로수를 들이받고 산산조각 났다. 얄궂은 신의 질투였다.

 

카뮈가 마지막 자동차를 탔던 보클뤼즈(Vaucluse) 루르마랭. 그는 여기서 수많은 소설을 잉태했다. 카뮈는 이곳에 살기를 오랫동안 염원했다. 그가 처음 이곳을 방문한 건 서른 살 때. 시인 친구 앙리 보스코(Henri Bosco)를 만나러 갔다. 둘은 그날 전갈(scorpions)이 가득한 루르마랭 성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 후 카뮈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자 꿈을 더욱 키웠다.

 

꿈꾸는 자 꿈을 닮는다고 했던가. 카뮈의 경우가 그랬다. 1957년 10월 스톡홀름은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줬다. 노벨문학상으로 받은 거액의 상금. 수상 소감을 마치고 연단을 빠져나오는 카뮈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카뮈 씨, 그 상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는 주저 없이 “멋들어진 집 한 채를 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집은 전망 좋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루르마랭의 옛날 잠실이었다. 카뮈는 이 잠실을 사서 멋스럽게 단장했다.

 

루르마랭. 왜 카뮈는 그토록 이곳을 사모했던가. 눈부신 태양 아래서 뫼르쏘 시즌2를 준비하기 위해였을까. 알제리 몽도비(Mondovi)에서 태어난 카뮈는 고향의 햇빛과 색깔을 자주 그리워했다. 흥겹고 정겨운 사람 냄새, 파란 쪽빛 하늘, 지중해의 따스한 입김도 사무쳤다. “프랑스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곳은 어디일까.” 결국 카뮈는 루르마랭을 발견했다.

 

루르마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협곡과 작은 구릉 위에 걸린 갖가지 종탑들,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길, 마을 중앙을 빙빙 감는 작은 길들, 포도밭과 올리브나무 사이로 수를 놓은 듯 도드라진 고풍스런 집들. 세련된 가게들과 모던풍의 갤러리들, 풍미 솔솔 나는 레스토랑, 뒤랑스(Durance), 칼라봉(Calavon), 압트(Apt) 골짜기로 이어지는 구릉선과 로마식 요새, 르네상스식 케슬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은 한 편의 파노라마다.

 

작가보다 아티스트이길 원했던 카뮈. 그의 안목이 선택한 루르마랭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이런 루르마랭의 카뮈 사랑은 지금도 오매불망이다. 로즈마리와 월계수로 뒤덮인 루르마랭의 카뮈 무덤. 한쪽엔 아비뇽석 비석 하나가 서있다. 그의 문체만큼이나 심플하다. 프랑스 정부는 카뮈를 위인들의 전당인 파리 팡테옹으로 모시려고 했다. 하지만 카뮈는 루르마랭과의 이별을 원치 않는다. 이런 카뮈의 루르마랭 바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그곳으로 떠나라. 루르마랭의 대장관은 백 마디의 말보다 직접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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