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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⑤ 모네와 에트르타

 

11월의 어느 날. 프랑스 북부 해안가 아치형 절벽 밑에서 한 남자가 그만 화폭을 접는다. 그리곤 곧장 연인에게 편지를 쓴다. “이곳은 지금이 제일 좋아요.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무능함에 화가 납니다.” 끌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이야기다. 이 남자를 절망시킨 곳. 그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에트르타(Etretat). 파리 북서쪽 200킬로 지점에 있는 알바트르(Albâtre) 해안가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희한하고 아름다운 석회암 절벽들이 있다. 이 절벽들 위로 미끄러지듯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선은 신비 그 자체다. 코끼리 형상의 절벽 끝에 나 있는 성문의 실루엣은 어떠한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닮았다. 여기에 풍요로운 전원, 울퉁불퉁한 절벽에 출렁이는 바다, 해안에 좌초된 배까지. 이 보다 더 완벽한 그림 구도는 없다.

 

에트르타 마법. 이 마법에 걸린 모네는 50여 점이 넘는 그림을 여기서 남겼다. 사실 모네 하면 아름다운 수련(Nymphéas)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수련 연작은 모든 걸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모네는 자연 속에 빠져 풍경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그중 하나가 에트르타의 해안절벽이다. 모네는 오랜동안 이곳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그가 처음 에트르타를 발견한 건 1868년 겨울. 하지만 15년이 지나서야 여기를 다시 찾았고, 화폭에 옮겨 담았다. 이 절벽 그림들은 모네를 최고의 경지로 올렸다.

 

하지만 에트르타는 모네만 유혹한 건 아니다. 귀스타브 꾸르베는 모네보다 먼저 이곳의 청정한 공기와 햇빛에 반해 아예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불후의 명작 '천둥이 지나간 에트르타'를 그렸다. “여자의 일생”을 쓴 기 드 모파상 역시 에트르타의 광팬이었다. 그는 이곳에 문학동아리를 만들고 친구들까지 불러들였다. 모파상은 에트르타에 이상하게 뚫린 구멍과 높은 절벽의 형상을 그의 단편과 콩트의 모티브로 삼곤 했다.

 

모네와 모파상. 두 천재는 1885년부터 자주 만났다. 에트르타를 표현한 모파상의 감성은 모네의 감성과 아주 잘 조응했다. 그들이 절벽에서 본 에트르타의 뷰는 19세기 그림과 문학의 연결고리가 됐다. 이를 이어받아 모리스 르블랑은 20세기 홈즈와 루팡의 전투지로 활용했다.

 

이처럼 수많은 그림과 문학을 잉태한 에트르타. 그곳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치는 불멸의 전설이다. 절벽 위로 활짝 펼쳐진 조망, 해질녘 자갈 위로 부서지는 파도, 절벽 끝에 붙어 있는 세 개의 하얀 아치 포르트 다발(porte d’Aval), 포르트 다몽(porte d’Amont), 만포르트(Manneporte), 뾰족탑, 아가씨들의 방, 초원 위의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소성당, 여기에 모네의 정원을 모방해 마담 떼보가 만든 7000 평방미터의 에트르타의 정원들.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경들이다. 오죽하면 프랑스 사람들이 이곳을 신혼여행지로 삼겠는가. 이런 아름다운 절경들을 살아생전 구경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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