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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⑦ 생상스와 디에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마치 꽃들이 동 트는 새벽의 입맞춤에 피어나듯!

하지만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여,

더 잘 내 눈물을 말리기 위해,

그대 음성을 더 들려주세요!

영원히 데릴라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말해 주세요!

 

 

너무도 애절한 아리아다. 용맹한 이스라엘 장군 삼손. 그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필리시테인 여인 델릴라. 백성을 배반하고 한 여인을 택하는 나약한 남자의 비극.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는 이 이야기를 '삼손과 델릴라(Samson et Dalila)'에 담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오페라곡은 탄생 당시 공연 금지명령을 받았다. 성경과 달리 묘사된 삼손이 프랑스 교회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결국 국경을 건너 독일로 갔다. 리스트는 생상스를 도와 바이마르 대공 오페라하우스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연주하게 해 줬다. 고진감래라던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의 찬란한 박수가 쏟아졌다.

 

'동물의 사육제'로 더 유명한 생상스. 그는 파리 자르디네(Jardinet) 3번지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열 살 때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가 됐다. 천재란 말을 다시 한번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생상스의 음악적 재치와 상상력은 여행에서 왔다. 여행광이었던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의 독특한 춤곡 ‘바카날’ 역시 북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민속춤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생적 노매드였던 생상스. 그는 황혼기로 접어들면서 유독 디에프(Dieppe)를 사랑했다. 디에프는 생상스의 아버지 자크 조제프가 태어나 농사를 지은 곳이다. 생상스는 두 아들이 죽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디에프를 자주 왕래했고 그가 소장하고 있던 많은 예술품들을 이곳에 시나브로 기증했다. 디에프는 생상스 동상을 세워 화답했고, 그의 서거 2주년에는 생상스 뮤지엄을 만들어 유품들을 전시했다.

 

디에프는 파리와 가깝다. 페리로 뉴헤븐까지 연결돼 있어 영국과도 무척 가깝다. 영국 해협과 아르크 강이 어우러져서 빼어나게 아름답다. 바다 정면에 펼쳐진 8헥타르에 이르는 잔디밭 사이의 산책로는 기가 막히다. 피사로와 모네가 이 길을 걸으며 영감을 얻고 한숨 돌렸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디에프의 정수는 고색창연한 역사다. 엔틱 유적지에 모던 건물들까지. 인류의 모든 역사를 망라한다. 웅장한 디에프성과 생 자크, 그리고 생 레미 성당, 콜베르 다리, 어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보행자 거리, 향내와 색깔들이 물씬 풍기는 진열대가 즐비하게 늘어선 토요 장터. 이색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가리비에 술 한 잔을 걸친 후 '삼손과 델릴라'를 들으며 디에프 거리를 걷는다면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상스 100주년 연말에 이 보다 더 멋진 선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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