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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통풍(痛風)

 

세상에서 최악의 통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이 겪은 병치레를 근거로 답할 것이다.

 

나는 통풍(痛風), 산통(産痛), 참척(慘慽)의 고통을 꼽는다. 참척은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는 비극을 말한다. 악상(惡喪)이라고도 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아픈 병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통풍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통풍을 앓고 있거나 심하게 앓았던 사람들은 이 문답을 어리석다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 때 처음 어느 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겪었다. 6.25처럼 그날 잊을 수 없다. 병원에 가서 통풍이라는 관절염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나의 투병사는 과장 없이 핏빛이다. 처절하고 혹독했다. 어린 딸 앞에 두고 울었다. 초반에는 1년에 두세 차례, 나이 들면서는 분기에 한 번, 이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통풍 환자들이 모인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고 주장했다. 마취하지 않고, 엄지발가락 첫 마디에 송곳을 찔러 박은 채 사나흘 동안 흔들면서 좌우로 돌린다고 가정해보라. 단 1초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로 그 통증이다. 해병전우회처럼 그래서 통풍환자들도 쉽게 친해진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 하여 병명이 통풍(痛風)이다. '아프다'는 표현은 실은 너무 약하다. 미세먼지가 환부에 떨어져도 그건 돌팔매다. 이 세상에 이 이상의 통증은 없다. 병원에 가면 강력 진통제인 스테로이드나 모르핀 주사를 놓아준다. 발목이나 무릎을 절단한 사람들도 있다. 심하면 신장 합병증이 발생하여 전선이 확장된다.

 

한국과 미국의 인구가 같다고 가정할 때,  30년 전에는 미국이 여기보다 통풍환자가 열 배쯤 많았다. 최근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한다.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통풍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영어로는 gout라 하는데, 미국에는 통풍 전문의인 gout specialist들이 동네마다 있다.

 

1000년 제국 로마가 통풍으로 망했다는 속설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종반부에는 열 살도 안된 것들이 술병을 들고 다녔다 한다. 백성들 대다수가 통풍에 걸려 운동도 못하고 당연히 전쟁도 못하는 구제불능의 족속이 된 것이다.

 

통풍환자에게 특히 술은 금기식품 중 맨 위다. 원인이면서 촉진자다. 젊음을 과음으로 낭비했다. 살롱의 안주들은 비싸고 저질이었다. 그 자학적 일상이 이 특이질환의 원인이었다. 후회막급이다. 동서양 공히 '부자의 병' 또는 '황제의 병'이라 했다.

 

20년을 호되게 앓고 통풍 지옥에서 해방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별 욕심이 없다. 단식 등 식생활 개선으로 20kg 감량, 금연, 그 시절에 비하여 1/10 정도의 음주, 하루 두 끼, 1-2만 보 걷기 등의 덕분이다. 

 

2021년 12월. 

대한민국은 통풍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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