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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이 시대의 “반란”은 “진리”다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독일출신 작가 패터 바이스(Peter Weiss/1916~1982)의 소설 『저항의 미학』은 1937년부터 1945년 반(反)파시즘 저항운동을 그려낸 작품이다. 시기적으로는 작가의 20대를 옮긴 셈이기도 한 이 소설의 첫 대목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부조(浮彫)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 박물관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제국의 한 국가인 페르가몬에 있던 신전(神殿)이 흙속의 파편으로 발굴되면서 그걸 다시 조합해 아예 독일로 옮겨 만들어진 전시공간이다. 고대 도시의 정신세계를 새겨놓은 이 부조 작품은 제우스가 이끄는 신들과 거인족 사이의 전투를 담아낸 신화를 펼쳐 놓았다.

 

 

패터 바이스가 소설의 첫 장에 기록한 문단을 압축해 보자면 이렇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언제나 싸우는 몸짓이다. 피하고 쨉싸게 몸을 빼고, 공격하고, 몸을 막고, 몸을 쭉 뻗어 일으키고, 잔뜩 웅크리고. 비록 여기저기 지워졌지만, 불끈 버티고 있는 왼발, 휙 젖힌 등짝, 윤곽만 남은 장딴지 하나로 그것들은 하나의 공동의 움직임으로 맞물리며 어우러졌다. 하나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신화는 제우스의 편에 섰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청년들은 이 부조의 서사에서 ‘신들에 대한 인간의 반란(反亂)’을 본다. 통치자들의 승리를 불멸(不滅)의 신화로 남긴 유적은 이제 조만간 반파시즘 저항에 나서게 될 젊은이들에게는 다른 해석으로 다가섰다.

 

정작 이 작품을 만든 주역은 ‘석공과 일꾼들’이었으나 결과는 여기에 “어떤 초인적 권력을 담아” 그 앞에서 “신민들은 경외감에 허리를 굽히고” 그래서 “무수한 종(從)과 노예들이 존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패터 바이스는 이 부조에는 명백한 “계급 투쟁의 현실”이 그려져 있고 이 싸움에서 패배하고 마는 비참한 민중의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고 짚는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군주와 귀족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의도와 욕심”으로 그 의미가 결정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손가락 하나로 남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소수 권력자”가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민중은 자신들의 역사를 재현한 것임에도” 그렇게 해석하고 그 관점에서 이걸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논리나 이성을 넘어, 권력이 그 공동체의 사유를 규정하고 마는 것이다. 지배세력의 사상과 이념이 그 사회의 지배 사상과 이념이 되는 이치에 다름 아니다.

 

반란의 주모자 헤라클레스

 

 

그런데 이 페르가몬 신전의 신화에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은 바로 헤라클레스다. 제우스가 수태를 시킨 알크메네를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괴롭히면서 헤라클레스는 신의 아들이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신들이 만든 통치 질서와 반목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훗날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 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통치질서에 저항했던 민중의 영웅을 기성의 질서 속에 편입시키는 교묘한 지배전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건 체 게라바를 자본주의 상품의 목록에 담는 전술의 원조인 셈이다.

 

신화의 역사적 현장에서 헤라클레스는 신의 권세를 뒷배로 하는 테베의 강압정치에 신음하는 민중의 편이었고 그는 이내 반란을 꾀하는 농민과 노예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헤라클레스는 무장한 국가와 대치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게릴라 부대 대장이었고 그를 시기하고 억압하려 했던 헤라의 비호를 받는 에우리테우스 체제의 폭정과 맞섰다.

 

작품 『저항의 미학』은 이런 역사적 쟁투의 현장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귀족들은 노동하는 무지한 대중은 잘못된 거짓말로 통제하고, 이들의 상급자와 지도자들은 뇌물을 찔러주어 매수하면서, 대중을 끔찍한 벌로 위협하며 뼈를 녹이는 노동으로 몰아쳤다. 이렇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바로 귀족들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대리석 채석장이 있는 섬으로 향했다.”

 

반란은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찰라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여인 메가라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방심하는 틈에 순식간에 폐족이 되고 광란을 일으키다가 에우리테우스 앞에 굴복하면서 목숨을 겨우 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은폐된 의도가 있는 항복이었고 이후 12가지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통치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신화의 기둥들을 하나씩 뽑아버린다.

 

 

머리 아홉인 뱀 히드라를 처치할 때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두 개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불로 달군 나무로 히드라의 목을 벤 자리를 지져 새 머리가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혁명의 권력이 적폐를 청산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 셈이었다.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포박되자 그의 간을 물어뜯은 독수리도 헤라클레스의 손에 잡힌다. 이 독수리 또한 인간을 위협하는 통치세력의 무기였으나 그 독수리의 다리는 생각보다 가늘고 형편없는 것이 드러났다. 거대한 괴물 수퇘지도, 지옥의 파수꾼인 머리 셋인 개 케르베르소도 헤라클레스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대단한 기세로 민중을 제압해온 군주 에우리테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위용과 잡아온 괴물에 대한 공포로 독 안에 숨어든다. 허상이 벗겨져버리고 권위는 추락한다. 벌거벗은 임금이었던 것이다.

 

 

파시즘과 정치적 메시아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인들은 막중한 전쟁보상금의 부담에 좌절했고 실행력없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상적 구호에 지쳐갔다. 불평등의 현실은 가혹했으며 민중의 우군인 사회주의자들은 이념과 노선투쟁에 골몰하고 있다고 보였다. 여기에 언론을 통한 지배세력의 여론조작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진실은 실종되어 갔으며 자신들을 구할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갈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독일 파시즘의 대중운동은 이런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온갖 프로파간다로 장식된 나치스와 그 중심에 서 있는 히틀러는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영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위의 탄생”이었다.

 

물론 그것은 기만으로 만들어진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으나 그렇게 해서 민중들이 겪는 고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이 지지했던 자가 자신들을 파멸로 몰고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댓가는 너무도 컸다.

 

칸트, 헤겔의 나라 독일의 철학과 사상은 이런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개인의 주체적인 비판정신을 강조했던 칸트의 계몽정신은 집단적 광기의 시대가 파도처럼 밀려들면서 “이성의 몰락”을 목격해야 했다. 루카치는 이를 훗날 “이성의 파괴(Destruction of Reason)”라고 불렀고 아도르노와 함께 『계몽의 변증법』을 낸 막스 호르카이머는 “이성의 침식(Eclipse of Reason)”이라고 명명했다. 그 호칭이 무엇이든 이성은 퇴각을 강요당했다. 이성의 권좌는 무너졌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헤겔이 강조한 “자유의 정신” 또한 파시즘의 적(敵)이 되었다. 그러나 헤겔의 이름이 워낙 무게가 있어 헤겔의 국가론을 완성시킨 것이 파시즘 국가라는 농설(弄舌)이 합리화되기 시작했다. 게르만 정신의 요체가 독일 파시즘에서 실현된다는 논리였다. 헤겔의 “자유”는 이렇게 암살되고 말았다.

 

하지만 헤겔 철학에도 책임은 원천적으로 존재한다. 그는 인간을 세계사의 전개과정에서 요구된 “절대정신의 도구”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여기서 사라진다. 그가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을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도 모르게 시대정신의 임무를 맡아 역할을 하는 존재로 만들고 이 과정은 저 유명한 “이성의 간계(List der Vernunft)”의 산물로 규정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런 식이 되면, 헤겔이 말했던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라는 말은 모든 부정의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고 만다. 이성은 부당한 것을 합리화시키는데 동원되는 논리적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진실을 정하면, 자신의 자리를 이미 잃은 이성은 노예의 임무에 몰두해야 목숨을 부지한다. 헤겔에게는 “정치와 이성의 관계”를 논파하는 대목이 미숙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에게 불리한 것은 진실일지라도 허위가 되고 권력에게 유리한 것은 허위라도 진실이 되는 세상이 지배한다. 여기에 도전하는 “의식”은 반란을 꾀한 모반의 죄로 몸을 묶이고 만다. 통치계급, 지배세력의 권좌는 이렇게 해서 누구도 감히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된다.

 

특권계급을 위한 국가권력의 총화인 파시즘은 모두가 굴종해야 하는 공적 권위로 법이 되고 제도가 되고 일상이 되면서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베와 같은 “폭정(暴政)”이 하루도 끊일 날이 없게 된다.

 

 

반란, 그 저항의 미학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움직였던가?

 

 

“그는 통치자들이 싫어하는 골목길의 노래, 시끌벅적한 북소리를 더 좋아했다. 도시 변두리를 돌아다니면서 오두막이나 지하방 삶의 곤궁함을 알게 되었다. 세금으로 진을 빨리고 배곯는 것은 언제나 종과 하녀, 억눌려 사는 머슴, 일당 노동자, 소상인들이었다. 하지만 저 위 성에는 고기와 채소, 과일이 넘쳐나고, 포도주 통과 보물 상자들도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저항의 미학』이 상상력으로 보여준 테베의 현실이다. 2000년도 더 지난 오늘의 한국과 얼마나 다를까?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은 정의를 위한 우리의 윤리적 판단에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유·불리할 지를 전제로 하는 순간, 불편부당한 정의는 존립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걸 몰라야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 논리는 그 베일을 가릴 수도, 거두어낼 수단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막막한 논거다. 그 “무지의 베일”을 놓고 판단을 받는 대상이 될 경우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몸에 걸쳤던 무지의 베일을 걷어내고 도시의 변두리, 지하의 삶에 들어섰기 때문에 노예의 반란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는 해방신학의 이론적 원조다. 그는 그의 저작 『해방신학』에서 “가난한 이들의 관점이 가진 특권(privileged perspective of the poor)”이라는 개념을 제출한다. 고통의 현실에 처한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세계, 그로 인한 호소, 눈물, 통곡은 정의의 기초다. 여기에 ‘무지의 베일’을 씌우는 순간, 세상은 통치자들의 기만에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건 벗겨내야 한다.

 

그렇게 보면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에 새겨진 반란은 모든 해방투쟁의 원형과 통해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된다. 이를 왜곡해서 통치자들의 정치신화로 만드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2022년 대선에서 우리는 촛불혁명 이후 만든 정부를 그대로 계속 연장하는 과정을 성사시키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지배세력들이 세운 페르가몬 신전 안에 갇혀 있고 그 안에 새겨진 투쟁의 부조는 우리가 만들었으나 저들의 기념비처럼 향유되는 역설이 구조화되어 있다. 본질적인 국가권력은 이들 지배세력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반란”이 답이다. 테베의 폭정을 준비하는 자들과 싸우지 않으면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하는 광기가 이 사회를 뒤덮게 될 것이다. 이성은 공개 처형되고 시민들은 머리 아홉의 히드라와 머리 셋의 맹견 케르베르소, 인간의 간을 물어뜯는 독수리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자국 군대의 총칼 앞에 무너진 파리 꼬뮌의 비극적 역사를 그려낸 에밀 졸라의 작품 『패주』 마지막 장면이다.

 

 

“유린당한 땅은 황무지로 변했고, 불타버린 집은 잿더미로 변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겸허한 사내인 장은 프랑스를 재건할 힘겹고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는 패주할 수 없다. 이미 겪은 일들이다. 촛불혁명으로 정부를 바꿨다고 통치질서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반란이다. 그것이 우리 미래다.

 

“하나의 공동의 움직임으로 맞물리며 어우러졌다. 하나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그 힘찬 역동성은 ‘저항의 미학’을 믿는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해서 그대로 전해진다.

 

저 위 성(城)에서는 상다리가 휘어지고 넘치는데 도시의 뒷골목은 신음하고 있다. 히드라의 목을 베고 그 자리를 완벽하게 지져야 한다. 테베의 위기를 절통해하고 노예들의 반란에 함께 하는 헤라클레스는 지금 바로 우리다.

 

북을 울리자! 이 시대의 반란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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