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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어게인'

 

 

z는 매일 죽고 싶었다. 엄마는 십년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버지는 몸이 심하게 상하여 일을 못한다. 학교에서는 늘 난폭한 놈들의 학대를 받았다. 교사들은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보통의 어른들과 다른 존재 아닌가. z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고교를 간신히 졸업한 z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죽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작은 의지도 힘도 없었다. 죽음이 곧 해방이었다. 그래서 소멸의 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절망적인 인생을 마무리 하려했다. 마침내 D-day가 다가왔다. 

 

지옥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어른들을 만났다. 나이 스물 넘도록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외계인' 커플이었다. 부모나 친척, 교사나 또래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표정, 눈빛이 달랐다. 충격이었다. 따뜻했다. 다정했다. 희망적이었다. 부드러웠다. 도움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z는 이제 스물 여섯살이다. 마주 앉은 이가 그 누구든,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필요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표시조차 못하던, 그래서 잠자는 시간 말고는 온통 죽음만 생각하던 위태로운 젊은이가 그 어른들과 만나서 죽음을 버리고 삶을 얻었다. z는 이 부부가 운영하는 소년희망공장의 매니저로 일하며 사이버대학의 심리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이 부부는 z와 비슷한 젊은이들ㅡ미혼모, 비행청소년, 가정폭력 피해자, 소년원 퇴소자 등 위기청소년ㅡ을 자식이나 제자, 친구나 동료처럼 관계한다. 그 그늘지고 눅눅한, 춥고 허기진 곳의 빛과 온기 자체다. 함께 일한다. 그들은 생활인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다 합치면 수백 명의 상처 깊은 청년들이 이 부부와의 인연으로 위기를 면했다.

 

솔직히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나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헌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타고 나는 것 같다. 예순 훌쩍 넘은 부부는 잠을 줄여서 비용을 줄인다. 놈들의 이상행동으로 그만두고 싶은 좌절감을 수시로 겪는다. 그러면서 새벽명상과 기도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크리스천도 있다.

 

내가 이 부부의 친구인 것은 큰 명예다. 조호진 시인과 최승주 선생. 이들은 재혼부부다. 노동해방문학그룹 출신으로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남편은 그 불멸의 사랑의 징표로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신장 한쪽을 떼어줬다. 이렇게 비범한 사랑의 당사자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한없이 착하다. 그 거룩함의 1할만이라도 실천하기로 작정했다. 나의 존경심은 높고 고마움은 깊다.

 


'위기청소년들의 친구 어게인'(여가부 등록)의 홈페이지는 어게인 (sagain.org)다. 후원계좌는 KEB하나은행 630ㅡ010122ㅡ427(예금주 어게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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