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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니콜로 파가니니와 니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사르데뉴왕국(현재의 니스)에서 눈을 감았다. 니스 남서쪽 190킬로 지점에 있는 그의 고향 제노바. 지중해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과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 부두의 하역인부였던 안토니오 파가니니(Antonio Paganini)는 가난한 여인 테레사 보시아르도(Teresa Bocciardo)를 만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낳았다.

 

칠삭둥이였던 파가니니. 병치레가 많고 허약했지만 아버지의 만돌린 소리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니콜로가 다섯 살이 되면서 음악에 큰 재능을 보이자 안토니오는 그에게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아들의 음악교육에 큰 열정을 보였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지오반니 세르베토(Giovanni Cervetto)에게 아들을 보내 레슨을 받게 했다. 여덟 살이 되면서 파가니니는 소나타를 작곡했고, 열한 살이 되면서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했다.

 

파가니니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나이 열세 살 때. 1795년 여름 연 콘서트가 성공했다. 여기서 번 돈으로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파르마로 보내 알렉상드로 롤라(Alessandro Rolla)에게 지도를 받게 했다. 당대 가장 유명했던 롤라 선생은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더 이상 지도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비범했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새로운 프레이징을 발명해 모든 코드에 혁명을 일으켰고,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와의 사랑을 ‘24개의 카프리치오’로 작곡해 최고의 걸작이란 찬사를 받았다. 천재 음악가 쇼팽과 리스트도 이 악마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런데 왜 그는 악마일까. 1836년 니스의 영주였던 세솔(Cessole) 백작은 파가니니를 초대했다. 세솔은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로 파가니니의 광팬이었다. 파가니니는 세솔의 집에 머물면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러나 곧 구베른느망(Gouvernement) 가(街) 23번지로 이사해 눌러 살게 됐다. 파가니니는 밤새껏 활주법으로 피치카토 등 음계를 연습했다. 이웃들은 불안해했고 심지어 두려워했다. 장작처럼 마른 몸에 못생긴 얼굴, 목구멍의 질환으로 말을 할 때면 코를 튕기는 버릇. 주민들은 오싹해 했고,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파가니니가 살다간 니스. 그곳은 오늘날 비외 니스(Vieux-Nice) 지역이다. 구 도시인만큼 왕국의 위상을 뿜어내는 많은 문화유산과 전통이 살아 숨 쉰다. 동쪽에 니스의 찬란한 밤바다와 야경을 볼 수 있는 콜린성, 남쪽에 미국외무성에서 영국인 산책로로 이어지는 푸른 해변의 포물선이 환상적이다. 서쪽으로 잠시 눈을 돌리면 하얀 석회암의 알프스 해안을 따라 비취의 파이옹 강이 도도히 흐른다. 그 위에 마세나 광장과 국립극장, 오페라극장이 웅장히 서 있다. 감성적인 파가니니가 홀딱 반할만 하다. 수려한 해안에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그곳. 니스에 관광객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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