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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곽재우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52~1617). 의령 출신. 현풍이 본관이다. 3대가 높은 벼슬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지만, 곽재우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최근 선생을 읽으며 나는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부산항에 쳐들어온 날은 1592년 4월 14일이다. 곽재우가 가족을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고, 선영의 봉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해놓은 다음, 거병한 날은 열흘 뒤인 4월 22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은 곽씨 집안 머슴들 열 명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 안에 2000명의 전투병력으로 증원된다. 

 

천석꾼이었던 곽재우는 우선 곡식창고를 연다. 군량미와 의병 가족들의 쌀독을 채워준 거다. 그리고, 계급차별 없이 가족, 형제, 친구, 사제 사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구국충정의 진정성, 왜장들조차 감탄하면서 두려워하는 천재적 병법, 헌신적 태도 등이 그 놀라운 리더십의 요소들이었다.

 

부대가 커지고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당연히 군량미의 문제가 1순위 과제다. 식량이 떨어지면 관군이건 의병이건 먹거리를 찾아 부대를 떠난다. 그 위기에 곽재우는 노비가 수백 명이나 되는 만석꾼 허언심을 찾아간다. 매부였다. 냉정하게 거절하던 그에게 의병에게 주지 않으면 왜놈들에게 빼앗긴다고 설득하여 엄청난 분량의 식량을 확보한다. 지역의 부자들도 양곡을 기부했다.

 

곽재우에게 가장 나쁜 적은 경상감사 김수였다. 김수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정예군을 데리고 도망친다. 수만의 백성들이 저항할 겨를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에게 파죽지세의 북진을 도와준 꼴이었다.  김수를 죽이려고 추적하던 곽재우가 오히려 김수의 모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 선조는 이순신을 괴롭히고 곽재우를 미워했다.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선조는 곽재우를 2년간 유배 보낸다. 그 머저리 선조가 장장 41년 동안 재위했다.

 

왜장 한놈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이다. 


"저희들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소서. 조선 군사들은 저희들이 왔다는 말만 들어도 화살 한번 쏘지 못하고 줄행랑을 칩니다. 게다가 관군들이 버리고 간 곡식이 도처에 쌓여 있습니다. 저희의 군량미입니다." 선조와 김수 같은 공직자들은 왜군 보다 더한 악인들이었다.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은 이토록 최악의 조건에서 목숨걸고 싸웠다. 곽재우는 백전백승이었다. 당시 호남은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왜장들은 병졸들의 전의와 사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전라도에 가면 넉넉한 식량과 미인들이 있다. 너희들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지껄였다. 곽재우 부대는 왜군의 호남진출 욕망을 매번 좌절시켰다. 

 

곽재우는 한 때 가족과 함께 울진으로 옮겼다. 거기서 신분을 감추고 패랭이(평민들이 쓰는 풀로 엮은 모자)를 만들어 팔아서 연명했다. 그 많은 재산은 의병을 유지하는 데 다 썼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지만, 사양한다. 작고하기 몇 년 전부터 밥을 먹지 않고 솔잎을 씹어먹으며 살았다. 그가 택한 죽음의 방식이었다. 곽씨집안에서 공치사는 금기였다. 곽재우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의 수제자였으며, 부인 김씨는 남명의 외손녀다. 남명이 중매했다. 큰 선비의 겸허와 품격이 시공을 초월하여 향기롭고 고매하다.

 

오늘 우리는 난데 없이 국난에 처했다. 마치 16세기 말 조선처럼, 홍의장군 같은 의로운 선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유사 이래, 공공분야의 악질들은 세상의 정의가 사라지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을 참지 못할 뿐이다. 위태롭다. 위태롭다. 실로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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