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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 어떤 고통에 대한 처방전

 

 

아는 동생의 고민상담전화이다. 새로 온 동료 교사 예닐곱 명과 식사모임에서 이런저런 아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중 40대 후반인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고1 아들을 키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말하던 끝에 “선생님 애는 몇 살이에요?”라고 물었다. “저는 애가 없어요. 결혼 안 했어요.” 대답을 하며 동생은 자신의 얼굴이 귀까지 화끈거리는 게 느껴지며 표정이 어쩔 수 없이 굳어졌다. 이런 상황들이 여러 번 반복되니 마음이 점점 힘들다는 게 요지였다. 

 

사실 생각해 보자면 만혼과 비혼이 늘고 있는 2023년에 결혼을 안 했을 가능성을 배려하지 않았으니까 악의는 없었더라도 무신경한 질문이긴 하다. “귀까지 화끈거렸다는 게 어떤 감정이야?”라고 물었다. “나만 실패자라는 생각에 수치스러웠어” 다시 물었다. “넌 결혼하려고 애쓴 적이 거의 없잖아. 그런데 왜 실패자가 되지? “ 나만 다르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 결혼했고 아이도 있었는데 나만 달랐어. ” 

 

“야, 내가 화병환자분들 많이 만나는데 여러 가지 겪다 보면 세상천하에 팔자 편한 게 독신이야.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맘고생을 해, 자식이 속 썩여서 걱정이야. 그 사람들은 네가 부러울 거다.”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편해지지 않는다. 

 

‘자아들의 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심리학자 시드라 레비스톤 박사는 책 『내 안의 가부장』(The shadow king)에서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목소리 또는 하위인격으로 지난 6000년간 지속된 가부장적 전통, 가치, 규칙 등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를 내면가부장으로 이름 붙였다.

 

가부장제가 그러하듯, 내면가부장은 여성을 보호하면서도 파괴한다. 오래되고 견고한 한계선 아래 안전하게 머물게 한다. 가부장제를 투영하여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결혼하고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지 못할 때 실패라고 여긴다. 동생이 자신을 평가한 실패자라는 생각도 그 목소리의 일부이리라 짐작해 본다. 물론 좋은 사람과 함께 결혼하여 만들어가는 사랑과 지지의 유대관계는 인생의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평생독신으로 지낸 칸트나 뉴턴을 실패자라고 하진 않는다. 

 

레비스톤 박사는 내면가부장의 존재를 의식하고 내면가모장(내면가부장과 대극에 있는 자아)을 비롯한 다른 자아들과 이원성을 넘어 통합하는 깨어있는 에고(Aware Ego)가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면가부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무의식적이고 익숙하기에 깨어있는 에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의식의 성장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일이 발생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해법이다. 그래서 당장 변화불가능한 지금의 상태가 고통이라면,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반응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그녀의 마음이 괜찮은지 어떤지 궁금해졌다. 안부를 물으니 “’내면가부장 개념’은 고통을 떨어져서 보게 하는 효과가 있었어 그렇지만 답답한 게 해결되지 않았는데 ’성장’이라고 하니 조금 더 힘이 났어. 참, 어제 문득 주역공부가 하고 싶어 져서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밝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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