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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이 세상이 어떤 건지, 당신은 아는가?

103. 애프터썬 - 샬롯 웰스

 

다소 요령부득하던 영화는 후반에 이르러 단 한 신으로 모든 걸 정리한다. 아빠(폴 메스칼)는 사람들 틈에서 우스꽝스럽지만 나름 진지하게 춤을 춘다. 주인공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눈에는 그때 아빠 모습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명멸하듯 깜박인다. 그것은 그 장면을 떠올리는, 이제 31살이 된 소피의 기억과도 같은 것이다. 기억이란 늘 깜박거리며, 그럼으로써 그 사이사이에 놓인 추억을 소환시키는 법이다.

 

어쨌든 이 장면이 이 영화 ‘애프터썬’의 하이라이트인 이유는 순전히 그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팝 음악 하나 때문이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이다. 이 노래 가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영화의 주제에 밀물처럼 다가선다. 가사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 세상이 어떤 건지 안다는 것은 정말 재앙이야/ 계속 사랑으로 극복해 보려 하지만 결국 난도질당하고 찢겨 버렸네/ 사랑은 한낱 철 지난 단어에 불과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 줄 거야/ 우리 스스로를 보살펴 줄 수 있게끔 만들어 줄 거야/ 이게 우리의 모습이지/ 억압 속에서 억압 속에서/ 억압!’

 

이 장면과 이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영화는 약간의 착시를 준다. 영화는 소피가 11살이 되던 해, 아빠와 했던 튀르키예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행복했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담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가 절규했듯이 이 세상이 어떤 건지 알게 되면 재앙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재앙에 대한 얘기일 수 있다. 행복과 재앙 사이에 끼어 있던 어렸을 적 언제쯤에 대한 얘기이다.

 

 

소피가 세상을 알게 된 시점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였던 듯 보인다. 이제 31살이 됐고 레즈비언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은 유년 시절의 그때만큼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 삶의 저 밑바닥에 놓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 끊임없이 휩싸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0년 간극의 소피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오래된 일은 단편의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게 하는 법이다. 아마도 소피에게는 그것이 ‘애프터썬’을 걱정해, 그러니까 해변에서 햇볕에 그을릴 것을 대비해 아빠가 자신의 어깨와 팔에 살살 발라줬던 선크림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촉감과, 그때의 햇살과 바람과 바닷물의 출렁임이, 연상작용으로 떠올랐을 것이며 어느 순간 그 여행의 전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아빠가 그때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바꿔 줄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아빠는 나를 사랑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아빠는 그때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지금의 나로 바꿔 냈을 것이다.

 

소피의 삶은, 우연한 기회(아빠의 캠코더를 발견한 것)에 그 사실을 기억한 지금, 또 다른 영역과 차원으로 넘어갔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그렇게 인간의 정신적 의식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표현해 낸다. 물질이 의식을 규정하지만, 때론 의식이 물질을 규정한다. 한 번의 깨달음이 세상을 바꾼다. 영화는 정신성(性)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지니는, 그 경이의 순간을 그려낸다.

 

이 영화가 온갖 평론가협회에서 상찬받은 이유(런던, 전미, 시카고, LA, 보스턴, 뉴욕비평가 협회상)는 그 찰나의 각성을 물리적으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글이나 문학으로 혹은 음악으로 아니면 그림으로, 더더군다나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해 내기가 워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에피소드 뒤에 숨어 있는 무섭고 어두운 삶의 오라(aura), 그 고통의 평범성을 끄집어내는 것, 관객이 그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에는 매우 정교한 연출의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무엇보다 인생의 진실에 대해 꾸준하면서도 진지한 고찰이 이어져 있어야 한다. 감독인 샬롯 웰스에게서 느껴지는 부분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엄마와 헤어져 살고 있는 데다, 집이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는 소피가 11살이 되던 어느 해 둘만의 여행을 계획한다. 아빠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즐겁기도 하지만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여행사 단체 여행과 자유여행을 섞어 튀르키예에 온 첫날부터 아빠는 침대가 하나뿐인 것을 두고 여행사에 항의 전화를 하게 된다. 소피는 이미 잠들었고 아빠는 아이의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 준 후 베란다에 나가 아이 몰래 담배를 피운다.

 

그는 이상한 몸짓으로 몸을 흔드는지 춤을 추는지 하는데 이때의 롱테이크 장면은 묵음으로 이뤄진다. 완벽한 밤의 침묵. 아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고 그 건너 창을 열고 바깥 베란다에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흔드는 아빠. 이건 아이의 기억인가. 상상인가. 아마도 그건 이 모든 기억을 소생시킨 캠코더 속 장면일 수 있다. 소피가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엮어내게 된 건 아빠가 여행 중 찍었던 캠코더 속 영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니까.

 

 

영화는 다소 불길하게 느껴질 만큼 어두운 암시가 중간중간 박혀 있는데, 그건 아빠의 ‘본질이 갖는 무엇’ 때문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빠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난 것은 뒤늦게 발견한 성정체성 때문일 수 있다. 그건 소피 자신이 게이가 돼 있는 장면 같은 것, 어린 소피가 난간 위에서서 아래층 구석의 두 남자가 키스하고 몸을 더듬는 장면을 엿보는 것 등으로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아빠가 여행 중 줄곧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었던 모습은 딸을 위해 만들어 낸 매우 의도적인 가벼움의 일환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왠지 모를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자살 충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슬쩍 보여 주는데 소피와 싸운 밤, 아빠는 비교적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주조(主潮)는 아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튀르키예 여행이 아빠를 만난 마지막 때였거나 아빠와의 행복했던 시간의 마지막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빠는 없다. 그 부성의 상실은 소피 자신에게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원천 같은 것이다. 상실과 결핍. 인생에서 그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외로운 것은 없다. 재앙은 없다.

 

 

퀸의 가사처럼 아빠는 누군가, 무엇인가로부터 억압받았을 것이다. 게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경제적 삶, 중하층 계급의 고단한 삶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억압은 결코 관념적이지 않다. 무언가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었을 것인 바 그 하나하나를 열거하지 않으면서도 그 억압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매우 특이한 귀착점을 보여 준다.

 

단체여행 중에 벌어진 노래자랑에서 아이는 혼자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R.E.M의 ‘루징 마이 릴리전(Losing My Religion)’이다.

 

‘난 네가 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 너의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했어/ 네가 노력했다는 걸 알고 있어/ 모든 속삭임,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난 나의 고백의 말을 고르고 있어/ 너의 눈을 맞추려 애쓰면서/ 상처받고 사랑에 눈먼 바보 같은 너’

 

어쩌면 소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11살 때 삶의 진창을 알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검게 그을린 햇볕의 자국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랑이 모든 것을 변화하게 할 것임을 그녀는 이제 확실히 깨닫는다. 그건 사라진(혹은 자살했거나 죽은) 아빠가 남겨 준 유산이다.

 

삶은 재앙이지만 늘 아름다운 것은 사랑 때문이다. 이 말이 단순한 관념의 서사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증명하고 증거해야 하는 법이다. ‘애프터썬’은 그 모호하면서도 상세한 기억의 진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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