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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마쓰시타 고노스케

 

1894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1989년에 작고했으니 100년 가까이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오사카로 나가서 자전거 가게의 점원이 된다. 기차역에서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를 생각하며 밤마다 울었다. 소년에게 돈벌이 현장은 갓 입대한 신병이 투입된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나는 세 가지 은혜를 받고 태어났다. 가난해서 어려서부터 온갖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다. 허약하게 태어나서 운동을 꾸준히 하여 건강하게 되었다. 무학(無學)이라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선생으로 여기며 배우고 익히는데 힘썼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비범하다. 선생에게는 신산고초(辛酸苦楚)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사에 정면대응하여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 어떤 난제도 포기하지 않고 궁리를 거듭했다. 심지어 경쟁사ㅡ소니社ㅡ대표를 찾아가서 묻고 흡족한 답을 얻기도 했다.

 

평생 머리맡에 늘 수첩과 펜을 놓고 잤다. 고뇌하는 사람들의 짧은 메모 한 줄이 경우에 따라 역사를 바꾼다. 출중한 경영자의 메모 한쪽이 기업을 마치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비약시킨다. 인간들은 예외없이 연약하고 빈약하다. 미미하다. 유한하다. 그 한계를 보완하는 지혜가 메모다. 둔필승총(鈍筆勝聰)! 메모가 탁월한 기억력 보다 쎄다.

 

1918년. 스물 네살에 자전거포에서 일할 때 낸 특허를 자산으로 창업했다.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 이 작은 회사가 훗날 세계 제일의 가전제품 그룹이 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늘날 그 위대한 성공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 또한 없다. 

 

마쓰시타 전기는 2008년 파나소닉으로 회사이름을 바꿨다. 현재 매출액은 70조원, 종업원수는 25만명이 넘는다. 자회사는 약 600개 정도 된다. 선생은 긴 세월 고뇌 끝에 기업의 제1 가치를 확정하여 천명했다.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 이 인본주의 경영을 진정성 100으로 실천했다. 이로써 마쓰시타 전기는 '노사 혼연일체'의 공동체가 되었다.

 

1차대전이 끝난 후, 전승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은 공업화를 급속하게 이루었다. 마쓰시타 전기도 그 수혜자였다. 이 때 미국발 대공황이 터졌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호사다마(好事多魔)의 법칙은 피해가지 못한다. 모든 기업들의 매출이 반으로 줄고, 부도가 일상이었다. 마쓰시타는 이 공황의 한가운데서 세계 최초로 해고와 급료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산더미 같은 재고가 석달만에 해소되었다. 회사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한 직원들의 보답이었다. 1930년대 초반의 일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 패전국 일본의 모든 재벌그룹이 해체되고, 대표자들의 직위는 박탈되었다. 나라는 노사분규로 아비규환의 나날이었다. 이때 마쓰시타 노조는 "우리 사장을 경영에 복귀시켜라"는 탄원서를 美군정청에 제출한다. 당시 분위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엄격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93%의 노동자들이 서명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마쓰시타는 경영권을 되찾은 유일한 기업인이 되었다. 역사가 된 것이다. 

 

선생이 팔순기념으로 친구들 여섯을 고급 식당에 초대했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인사가 되었을 때다. 최고의 요리사가 차린 음식을 반밖에 먹지 못했다. 쉐프가 걱정되어 그를 불렀다. "내가 나이 탓에 소화력이 떨어져서 남긴 것이니 맛 없어 못먹은 것 아닌가 하여 언짢게 생각하지 말기 바라네. 자넨 일본 최고네." 그는 평생 이 마음으로 살았다. 경영도 그렇게 했다. 향기롭지 아니한가.

 

PHP연구소와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은 선생의 독보적인 치적이다. 'Peace &  Happiness through Prosperity'! 나는 이 철학적인 목표를 "다정한 사람들이 함께 열심히 일해서 당당하고 크고 아름다운 부(富)를 이룹시다. 그 역량으로 세상의 평화와 사람들의 행복을 항구적으로 실현합시다. 인생을 걸고 헌신합시다." 라고 풀었다. 선생의 마음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나의 신념이기도 하다. 현재 PHP 종합연구소는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씽크탱크다. 이제는 그룹으로부터 지원받지 않는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 양성학교다. 1979년에 세워졌다. 최고 실력자 다나까 총리가 구속된 록히드항공 뇌물사건이 터진 뒤였다. 25-35세의 젊은이들 7-8명을 엄선하여 4년간 공부한다. 국내외 최고의 쎌럽들을 초청하여 강의하게 하고 네트워킹한다. 학비는 없으며 월 20만엔의 용돈을 준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선생의 인식에서 탄생한 것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선생의 100년 인생은 하나의 육중한 질문이다. 선생을 대신하여 내가 묻는다. "그대는 2억분의 1의 기적적 확률로 태어나서 오직 한번 , 겨우 백년을 살다 간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시간을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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