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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삐빅, 이러면 진상 학부모입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좋으신 분들이다. 늘 젠틀하시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도 많이 해주신다. 그분들로 인해 힘과 위로를 얻는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좋은 학부모님들만 만났다. 문제는 운이 나쁘면 죽음을 결심할 수 있을 정도로 괴로워진다는 거다. 일당백을 하는 진상을 만나면 버틸 수가 없다. 진상 학부모 감별기 같은 건 없지만 아래 사례 정도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진상 축에 들어갈 수 있다. 그저 한 통의 메시지와 전화를 했을 뿐인데 수십 명에게 연락받는 교사는 정신과 약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 ‘선생님 시간되실 때 전화 주세요.’ 별거 아닌 내용이지만, 이 내용을 받는 순간 심장이 덜커덕거린다는 교사가 많다. 교사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다. 역으로 교사가 학부모에게 시간 있을 때 전화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메시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겠는가? 용건을 구체적으로 써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다.

 

2) 애가 친구한테 맞았는데 / 욕을 먹었는데 / 싸웠는데 선생님은 알고 계시나요? 이런 멘트까지 문제가 되는 건가 싶을 수 있다. 멘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 말을 시작으로 교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게 문제다. 일단 교사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99.9%를 알고 있다. 0.1%를 모를 순 있지만 그 정도의 일이면 부모도 모를 확률이 높다.

 

학교에서 아이가 싸우다가 맞거나 욕을 먹은 게 엄밀히 따지면 교사 탓은 아니다. 역지사지로 집에서 형제끼리 심하게 다툰 걸 아이가 등교해서 교사에게 말했고, 그걸 교사가 속상해하며 학부모에게 알고 있었냐고 따지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을 거다. 교사도 대체로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선생님 이런 일을 알고 계신가요.’가 아니라, 아이에게 들은 내용을 설명하고 원하는 바를 말해야 한다. ‘상대 부모에게 연락해달라’가 요구라면 그것만 말해도 충분하다. 또 그런 감정노동을 교사에게 대리할 거면 고마워하는 기색이라도 내비치자. 교사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메신저를 자처하면서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3) 아이를 방치하기. 객관적으로 아이의 상태가 안 좋은데 방어적으로만 나오는 학부모들이 있다. ‘아직 어리니까 봐달라’와 비슷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같은 반, 같은 학년 모든 친구들이 똑같이 어리지만 이상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친구를 여러 차례 때리거나, 교사에게 욕을 하거나, 수업을 지속해서 방해하는 행동은 어리니까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아니다. 의사의 진단을 받아서 약을 먹든, 놀이치료와 상담을 받는 부모가 액션을 취해야 한다. 학교는 병원이 아니고 센터도 아니다. 일단 보내놓으면 아이의 행동이 저절로 고쳐지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4) 갑자기 학교로 찾아오기. 지금 학교로 간다는 문자 하나 남기고 그냥 찾아오는 행동은 최악이다. 교사의 확답을 듣지 않고 행동하는 순간 진상 확정이다. 한국 학교는 문턱이란 게 없어서 아무나 불시에 찾아와서 학교는 뭘 했냐, 교사 자격이 있냐 같은 소리를 해도 막을 수가 없다.

 

위의 일들은 얼마 전 돌아가신 서이초의 어린 선생님이 비슷하게 겪은 일들이자 한국 초등교사가 처한 현실이다. 서이초와 모 사립초에서 돌아가신 선생님들을 떠올리면 미안해서 자다가도 몸서리가 쳐진다. 본인의 자녀가 소중한 만큼 교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교사가 정신과에 가고 자살까지 선택하는 이유는 거의 학부모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학생이 문제인 경우도 있겠지만, 학생의 학부모가 협조적이라면 교사는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다. 부디 교사가 더 이상 죽지 않도록, 공교육이 악화되지 않도록 학부모님들의 도움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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