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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이승만 기념관

 

2023년 8월 3일, 광복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이 열렸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이승만 기념관' 프로젝트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 사업은 이승만을 신격화하여 건국대통령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그건 '괴물기념관'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어서 "문대통령이 1919년 4월 11일(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이라고 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그날 '대한제국'이 끝나고 '대한민국'이란 공화정이 처음으로 헌장에 채택된 것이다. 왕조는 망하고 흥하고 반복되었지만, 나라는 지속되어왔다"고 주장했다.

 

2023년 6월 28일, '이승만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출범하였다. 위원장은 이명박 때 국무총리 김황식. 위원들은 대부분 보수인사들로, 이인수 박지만 김현철 김홍업 등 전직 네명의 대통령 아들들이 들어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미, 대일관계에서 심히 우려되는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밖에서는 굴욕적이고, 안에서는 불친절하다. 그래서 모욕적이다. 이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의 12년 독재를 상기시킨다. 기념관 논란에서 이승만의 '나쁜 정치'와 그로 인한 '지옥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정부라면 매우 듬직하게 보일 것 같다.

 

이승만이 왜 동지였던 독립지사들을 저주하듯 못살게 굴고, 라이벌들을 암살하고, 친일반민족세력과 손을 잡았을까.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이승만의 죄상을 제대로 안다면,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부를 수는 없다.

 

첫째, 임시정부 수반까지 지냈던 이승만은 '반민족행위 처벌특별위원회'를 해체(1949년 6월 6일)함으로써 그 후 오늘날까지 70년 넘도록 이 나라를 저질정치의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이승만의 지시로 반민특위를 습격, 특위위원들을 잡아다 고문했으며 살해하려고 테러리스트를 고용했다. 그의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로써, 이 나라는 친일반민족 세력의 청산에 완전히 실패하고, 청산파를 빨갱이로 모는 프레임에 빠진다. 오늘 우리의 정치사회적 문제들은 예외없이 반민특위의 실패에 기인한다.

 

둘째, 6.25가 발발하자, "국군이 승전을 거듭하며 북진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며 서울에 있는 것처럼 거짓 선무방송을 했다. 이승만은 일찌감치 대전으로 도망쳐, 거기서 녹음하여 중앙방송으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의하면, 이승만은 개전 이틀 뒤인 6월 27일, 일본에 6만명의 이주허가를 요청했다. 망명정부를 구상한 것이다. 거절당했다.  

 

세째, 1950년 6월부티 9월까지 3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20만 명 정도의 민간인을 죄없이 즉결처분했다. 경찰, 군인, 우익청년들이 이 살륙에 동원되었다. 허가받은 살인마들이었다. 이것이 소위 '보도연맹사건'이다. 

 

네째, 제주도민 1/3을 도륙한 이른 바, 4.3사태의 총감독이 이승만이었다. 그는 '제주 민란'을 지역사안으로 보지않았다. 갓 출범한 초대정부의 정통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행한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 보고 칼 뽑기)이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 비극이었다.

 

다섯째, 이승만은 3선을 끝으로 물러난다던 약속을 깨고 4선에 나섰다. '득표율 115%'가 나온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전국이 일어났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정권이 몰락했다.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군이 바다에서 떠올라, 그 여파가 4.19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은 자리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도주한다.

 

위의 예시들은 이승만의 폭정(暴政)과 비정(秕政)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이승만 기념관 논란은 이쯤에서 소멸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좋다고 본다. 

 

첨언:이종찬 광복회장은 조선중기 고품격 선비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다. 조부 우당 이회영과 그 일족은 국경 넘어 만주로 이주, 현재가치로 수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쏟아부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우당의 형 이석영(신흥무관학교 교장)은 여든 살에 상하이의 한 빈민가에서 굶어죽었다. 조선 500년을 넘어서 이 나라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가문이다. 

 

이런 집안에서 뭘 더 바라겠나. 온갖 망언을 지껄이며 이회장과 광복회를 비난하는 개인과 단체들은 반민특위가 응징하지 못한 친일매국세력의 후손이거나, 정권을 편들면 언제나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아는 생계형 중생들일 것이다. 

 

긴 말 더 필요한가.

 

[덧붙임] *이종찬 광복회장은 8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마련한 독립운동가들과  유족 초청 오찬장에서, 1주일 전 '괴물 기념관'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인하여 마치 오보를 낸 기자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글 전체를 대폭 수정해야 하는가, 로 고민했습니다만, 국가와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광복회의 수장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것도 보존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승만 국부론'에 관한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해명문으로써 독자 여러분들께 사과의 예를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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