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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홍범도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소설가가 자신이 쓴 소설 밖의 이야기로 질문을 받는 일은 드물다. 나는 평생 받고도 남을 그 드문 질문을 지난 며칠 내내 받았다. 내가 쓴 소설 ‘범도’의 바깥에서 벌어진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에 대해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나는 누가 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려 드는지는 잘 모르지만 철거의 대상이 된 그들이 누구인지는 조금 안다. 줄이고 줄여서 6백 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으로 펴낸 소설 ‘범도’에 담긴 홍범도와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이회영 선생의 이야기를 몇 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한 문장씩으로 대답했다.

 

-홍범도?

-항일무장투쟁 전선에서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으면서도 무엇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도 않은 채 극장 수위로 최후를 마친 조선 최고의 포수가 홍범도입니다. 홍범도가 최초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단발령에서 일본군 12명을 사살한 것이 1895년 9월 19일이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1908년 일본군 천지가 된 조선을 떠나 압록강을 넘어갈 때까지 그는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많이 이긴 포수부대의 대장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부두에서 하역노무자로, 우랄 광산의 광부로, 고기잡이배의 어부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총과 탄환을 마련해 다시 무장투쟁을 계속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선포한 대한 독립전쟁 제1회전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이끌며 가장 크게 이긴 대한독립군 사령관이었다.

 

나는 만주와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답사하고 홍범도의 삶을 추적하며 ‘범도’를 집필한 지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홍범도가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봉오동 전투에서는 총사령관 자리를 최진동에게 양보하고 1군사령관으로 내려가 싸웠고, 죽기 열흘 전에는 잔치를 열어 옛 동지들을 배불리 먹이고 위로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부하들에게 극장 수위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주고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는 일본군의 고문으로 죽었다. 그와 함께 싸웠던 큰아들 양순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했고, 작은아들 용환도 항일전선에서 숨졌다. 재산 한 푼 남기지 않았고, 핏줄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나라에서 살고 있다. 단 한 순간도 항전을 포기하지 않고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가장 크게 이겼지만 승리한 그 하루를 제외한 모든 날을 일본군에게 쫓겨 다녀야 했고, 끝내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쫓겨나 극장 수위로 죽어야 했던 홍범도다. 그런 홍범도를 78년 만에 조국으로 모셔온 지 겨우 두 해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런 그를 또 어디로 내쫓겠다는 것인가. 그와 그의 동지들이 모든 것을 바쳐 지키고 되찾은 이 나라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그들이 남긴 나라에 사는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은 못해도 우리를 독립된 나라에 살게 한 그들의 흉상 하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핏줄 한 점 남기지 못한 그들이 남긴 나라에서 사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그가 러시아 레닌을 만나고 러시아 공산당에 가입했기 때문에 육사 교정에서 그의 흉상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그가 출세하기 위해 소련으로 가고, 공산당에 가입했는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가 싸울 곳이 없어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라가 러시아였고, 그 러시아를 지배하는 것이 공산당이었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던 그가 공산당에 입당해 자신을 위해 누리고 얻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레닌을 만난 1922년 극동민족대회에 조선의병대 대표로 참가한 그는 앙케이트에 이렇게 적었다.

- 이름: 홍범도

- 직업: 의병

- 목적: 고려의 독립

그는 왜 소련에 가고 공산당에 가입했는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이 일본이었고 일본과 싸우는 나라가 소련이었을 뿐이다.

“내가 어느 편이냐고? 일본군과 싸우는 편이 내 편이오.”(소설 ‘범도’ 중에서)

 

우리가 혈맹이라고 하는 미국도 일본의 침략을 받고 러시아와 연합군이 되어 일본과 싸웠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빨갱이의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군대는 제 나라를 지키고, 빼앗긴 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제 나라를 지키고 되찾기 위해 홍범도보다 더 오래 싸우고 더 크게 이긴 이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침략자로부터 끝까지 나라를 지켜낼 지휘관을 양성하는 요람이어야 할 육군사관학교가 그의 흉상이 있어서 아니 될 곳이라면 그 육군사관학교는 대체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가.

 

홍범도가 있어야 할 곳이 육사 교정이어서 안 된다면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한 이회영선생의 손자인 이종찬광복회장의 말대로 독립기념관으로 내쫓으며 수모를 주지 말고 차라리 흉상을 파쇄하여 없애버리는 것이 백번 옳다. 처음부터 그가 원했던 흉상도, 육사도 아니었다. 홍범도가 원한 자리는 오직 침략자 일본과 싸우다 죽을 자리, 그 하나가 전부였다.

 

오늘 우리는 홍범도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슬프게 확인하고 있다. 홍범도의 독립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나라가 독립하지 못한 것인데, 기념할 무슨 독립 이 있어서 독립기념관으로 간단 말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독립전쟁이라면 그는 기꺼이 그 최전선으로 갈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과 싸우게 해달라고 극장 수위의 제복을 입고 러시아 군대로 찾아가 자원입대 신청을 했던 73세의 노인이 바로 홍범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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