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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서사 부재 시대의 비극

 

우리 아파트 단지 앞에 또 카페가 들어선다. 크고 작은 게 여러 개 있는데도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카페가 들어서니 의아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는 카페 천국이다. 휴일 날 이 카페 저 카페 앞을 지나치다보면 깜짝 놀란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동네만의 특징은 아니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건물마다 카페가 하나씩 있고, 그 카페마다 사람들로 꽉 차 있는 모습은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카페 공화국인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농촌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급격하게 산업화·도시화 되면서 삶 자체가 파편화·원자화한 게 큰 이유일 것이다. 이를 테면 상실한 공동체 사회의 서사에 대한 희구가 카페 천국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서사적 존재임을 새삼 확인하고 안심할 것이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균형 감각을 찾아 이를 삶의 가늠자로 삼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는 인문학적으로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화하는 존재인 인간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카페 천국의 뒷면은 서사의 빈곤이다. 카페가 절실하다는 것은 그 반증인 것이다. 이런 서사 빈곤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기 마련이다. 우리의 고전은 그런 시대에 개인이 얼마나 병드는가를 보여준다. 장화홍련전의 장화와 홍련이 계모의 핍박에 말 한마디 못하고 삭이기만 한 까닭에 귀신이 되어 현실 세계인 마을을 황폐화시킨 것은 적절한 비유일 터이다.

 

서울 신림동의 칼부림 사건과 성폭행 살인 사건, 대전의 고교 교사에 대한 칼부림 사건, 성남 서현동의 칼부림 사건 등의 특징은 서사를 잃은 자들의 흉악 범죄라는 점이다. 피의자들 모두 은둔 형 외톨이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크고 작은 범죄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그만큼 서사 부재의 폐해가 큰 것이다.

 

서사가 갑자기 풍부해질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사 약화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목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파편화·원자화 사회에서 학력 중심주의가 기름을 끼얹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학력계급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그 어느 나라보다 학벌의 폐단이 크다. 학력은 곧 출세의 지름길이며 정반대로 저학력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지난해 출간된 구해근의 『특권 중산층』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중산층 상층부는 대부분이 고학력층인데 이들은 학력을 중심으로 임금 소득과 부동산 소득 등에서 특별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학력 대물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신분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는 징후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에 끼지 못하는 중산층 하층부와 서민층의 출구 없음이다. 출구 없음은 상대적 빈곤뿐만 아니라 서사 부재를 부채질 해 여러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서사 부재와 흉악 범죄의 상관성을 수치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접근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숱하게 많은 카페가 힌트를 주지 않을까. 서사적 존재인 인간에게 서사가 하나의 약일 수 있다는 것을. 동네 작은 카페가 문 열면 찾아가서 사람들과 아무 말 대잔치라도 벌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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