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의에서 강사가 물었다. “수용한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이 마음의 상태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느 수강생이 답한다. “수용은 끌어안고 품는 것이고 포기는 밀쳐내는 느낌이에요.” “그렇죠. 수용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는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상태예요. 포기는, 아 모르겠다. 신경 안 쓸란다. 그런 느낌이고요. 수용과 포기는 의식의 상태가 매우 달라요. 수용은 수행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예요.”
머릿속으로는 익숙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수용이라는 개념. 실제로는, 수용했다고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했던 건 아닐까. 강사가 말을 잇는다. “저희 클리닉을 방문하는 여성의 70%가 크고 작은 성폭력을 경험했어요. 오랫동안 아버지나 친척 등에게 어렸을 때부터 당했던 내담자들도 있고요. 그들에게 수용하라고 하면 잘 되겠어요. 어떻게 이야기해도 공감이 안 되고. 치유를 위한 철저한 수용은 수용하려고 끊임없는 수행하는 노력하는 과정이에요. 할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을 다 해봤을 때 그래도 잘 안될 때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철저한 수용’의 개념을 대중화한 타라 브랙은 이 개념을 두 개 날개로 설명한다. 한쪽 날개는 마음챙김의 상태이다. 이 상태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면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인식하는 과정이다. 마음챙김의 상태에서 우리의 신념, 가치. 과거 경험의 이야기라는 왜곡된 필터를 내려놓고 현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날개는 자비의 시선이다. 자비는 분노나 실망을 밀어내거나 판단하는 대신에 부드럽고 친절한 시선으로 나를 감싼다. 자비와 함께 자신의 상처와 공존할 수 있다.
수용은 전통명상의 핵심주제이며 뇌과학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철저한 수용은 강력한 치유효과를 발휘한다. 수용의 상태에서 파충류의 뇌로 불리는 편도체는 안정되며 인간답게 만드는 조절 기능의 전전두피질은 활성화한다. 연구에서는 암 환자에게 마음을 내려놓는 적극적 수용으로 환자의 행복도가 높아진 결과가 있고 만성 통증환자에게 수용훈련을 하자 전반적인 행복도가 향상되었다고 보고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매일 아침 자신이 미워하는 인간들이 떠올라 괴로워 술을 먹는다는 구 씨에게 (미정을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미정은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라고 말한다. 구 씨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미정의 말대로 자신을 배신한 형을 떠올리며 독백한다 “맨정신으로 일어날 때 아침부터 쌍욕하게 만드는 인간 중에 형도 있는데 형 환대할 게.”
아침마다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구 씨는 지금도 환대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철저한 수용에 조금씩 다가가 그만큼 자유로워져 있지 않을까.
타라 브랙의 책 ‘받아들임’의 표지는 한 여인이 반쯤은 흘러내린 큰 모래시계를 마치 아이를 안듯이 꼭 품고 있다. 철저한 수용이란 고군분투했던 삶의 시간들을 그렇게 안아주는거라고 웅변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