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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당신도 그러할까

 

고이는 것들이 있다. 속으로 깊어져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겨울이 그렇고, 상처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고여서 깊어지는 건 뭐든 아찔하다. 겨울이든 상처든,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속으로 깊어져서 켜켜이 가라앉는 것들은 위험하다. 그래서 병(病)드는 줄도 모른다. 낙하를 거부하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그렇다. 녀석을 가리키며 그 누가 간밤에 흩날린 눈이라고 하겠는가. 간신히 붙들고 매달린 수직의 눈물 작대기를 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본래 같은 것들이라 단정하진 말기로 하자. 비든 눈이든 얼음이든 벗겨놓고 보면 똑같은 것이라고.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쇼윈도 속 마네킹 같은 것이라고. 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섣부른 결정은 때늦은 후회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니까.

 

쌓이는 것들이 있다. 안으로 깊어져서 아득해지는 것들이다. 세월이 그렇고, 고독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쌓여서 깊어지는 건 뭐든 애처롭다. 세월이든 고독이든,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안으로 깊어져서 켜켜이 고립되는 것들은 위험하다. 그래서 하얗게 소멸하는 줄도 모른다. 드러내지 못하고 나무껍질 속에 똬리 튼 나이테도 그렇다. 녀석을 가리키며 그 누가 고스란히 기록된 아름드리나무의 역사라고 하겠는가. 끝끝내 살아남은 것들의 들숨과 날숨이라 하겠는가. 뜻도 소리도 없이 안으로 깊어지는 동그라미의 흔적을 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안으로 깊어져서 쌓이는 것들을 ‘쓸모없음’으로 멸시하진 말기로 하자. 말이 없다고 해서 뜻조차 없음은 아님이니. 진정한 ‘앎’이란 ‘모름’의 벽 너머에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늘 고이고 쌓이는 것들 틈에서 산다. 도시를 배회하는 것들을 따라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인다. 소비가 미덕인 세상에서 소비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밥벌이 속으로 깊어지기라도 하면 시절을 파먹는 밥벌레로 꿈틀거린다. 그렇게라도 살아야겠지. 자동차 똥구멍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바늘 끝 같은 자존심을 꿀꺽 삼키며 도시의 그늘 속으로 기우뚱 걷는다. 당신도 그러할까. 문득 궁금하다가도, 눈보라 흩날리는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면 귀를 닫고 만다. 발을 동동거리며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흩날린다. 퇴근길에 내리는 눈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다. 네온 불빛은 맑음을 가만 두지 않는다. 맑음을 방치하고 있을 자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눈물조차 화려한 색깔이어야 하니까.

 

당신도 그러할까. 속으로 고이고 안으로 쌓이는 사람들처럼. 비명조차 간신히 삼켜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까. 동동걸음을 반복하며 함박눈 틈에서 나부끼고 있을까. 신호대기 상태의 고드름처럼 울지 못하는 것들의 나이테를 새기고 있을까. 그리 보면,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눈(雪)을 닮았다. 나는 눈을 닮은 당신들이 좋다.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모두 같은 게 아니다. 눈은 비처럼 소리 내서 울지 않는다. 소리 내며 흐느끼기보다 찬란히 부서짐으로 울음을 대신한다. 그래서 눈은 겨울 하늘을 골라 투신하는지 모른다. 한줌의 온기마저 상실한 당신과 나를 대신하여 울어주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소멸하는지 모른다. 겨울에 쏟아지는 비는 있어도 여름에 흩날리는 눈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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