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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이순신

 

오늘 '노량 - 죽음의 바다'를 두번째 봤다. 전투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너무 길다', '특히 엔딩이 용두사미 꼴'이라는 견해였다. 나는 '朝日 7년전쟁'과 그 재앙의 중심에서 태양처럼 빛났던 이순신의 아름다움과 향기, 上머저리 선조의 더러움과 추함을 생각했다. 

 

정치의 본질은 400년전 왕조시대나 대명천지 21세기 민주공화정의 시대나 큰 차이가 없다. 풍전등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나라와 백성을 살려낸 구국의 영웅은 예외 없이 간신들의 모함과 질투의 대상이 되어 죽거나 그에 준하는 탄압을 받는다. 

 

우리 역사에 이순신이라는 초인적인 인물이 실존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또한 실로 소중하다. 물신숭배의 정점인 오늘의 세태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위인전은 당시의 한 뛰어난 글쟁이가 원고료로 찹쌀 스무 가마쯤  받아먹고 심청전 쓰듯 창작한 것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신년연휴 이순신을 읽으며, 희노애락의 감정이 그가 싸웠던 바다의 높은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참 좋았다.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70%가 이순신을 꼽는다고 한다. 아이러니는 왜 이순신인가,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궁색하다는 점이다.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800종 이상 출간되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 아마도 공교육이 장학퀴즈 풀듯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명량', '한산ㅡ용의 출현'에 이어 '노량 - 죽음의 바다'까지 이순신 시리즈를 흥미진진하게 봤다. 감독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23전 무패의 그 위대한 '전쟁의 신'과 그 신화는 그만 얘기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깊이 생각해보라. 그건 일종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꼴 아닌가.

 

대신, 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인간미, 그 미덕이 바탕이 되어 자라고 쌓여 끝내 완성된 '충무공 리더십'을 배우고 체화하고 전파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 점잖은 교양인의 요소로 여겨지기 바란다. 그로써 우리는 얼마나 품위 있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 더 나아가, 이순신은 우리의 조상이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저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에게도 차이없이 높은 정신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어른에게서 가장 크게 감동받은 것은 선조에게 올린 출사표 장계(狀啓)다. "원컨대 한번 죽음으로써 기약하고 즉시 범의 소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기운을 쓸어버리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만분의 일이나마 씻으려 하옵거니와, 성공과 실패, 잘잘못은 신하인 제가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아, 북극성처럼 드높은 자존감이여!

 

왜적에게 자식도 잃고, 모함을 당하여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서 백의종군할 때, 그는 사실상 깡그리 망가져버린 수군을 수습하여 대적했다. "나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 '死卽生, 生卽死'(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고, 살 길을 찾으며 싸우면 죽는다)"의 불퇴전의 정신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해전사상 최고의 승전으로 기록되었다.

 

일본의 사토 테츠타로 제독은 "영국 넬슨 제독의 명성이 아무리 높아도 이순신 장군의 인격과 천재성에는 필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순신 연구자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이순신은 공직을 맡고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단 한번도 행사한 적이 없다.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봉사자의 길 위에서 평생을 살다 갔다"고 말한다.

 

왜군은 20일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접경지역인 의주까지 도망쳤다. 도주로에 비가 내려서 길이 질척거렸던 모양이다. 선조는 "백성들이 엎드려 등을 대주지 않는 것은 불충하다"며 통탄했다. 그 무능한 악마는 장장 41년 동안 그 자리에서 그 수준으로 나라를 산산이 부수고 민초들의 신명을 마구 밟아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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