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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몇 살이세요

 

어둠이 내려 만물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는 저녁시간 산길을 걷고 싶어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에서 어린 소녀를 만났다. 그 어린이는 내게 대뜸 “몇 살이세요?” 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 “70살이야” 하니까 어린이가 “나는 여섯 살이에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열 배도 넘게 더 먹었구나” 하고 있는데, 어린이 어머니가 와 소녀에게 뭐 하고 있느냐고 물어 나는 서둘러 내 길을 걸었다.

 

어린이가 쉽게 내게 말을 걸어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움’ 속에서 그리움과의 이별을 못해 바보 같은 노객(老客)이라고 스스로를 구박하고 사는 내게 말을 걸어오다니.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나이를 물어온 것일까. 온통 흰머리도 아니고 아직 바르게 걸을 만한데- 순간이었다. ‘당신 삶의 세월을 잊지 마라. 나이에 걸맞는 삶을 살아라. 앞으로 남은 삶을 낭비하지 말고 나이 값 하며 신이 준 운명의 길을 불만 없이 걸어가라'는 뜻 아닌가 싶었다.

 

한 생명으로서 때를 안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공부도 때가 있다. 일할 때가 있고 놀 때가 있다. 연애도 때가 있다. 외칠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다. 기회는 꾸준히 주어지는 것 아니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링컨은 말했다 ‘나는 공부하고 준비하리라. 그러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라고. 인생의 낭비 중 최악의 낭비는 시간 낭비다. 돈은 그다음 문제이다. 태어나 70년을 살면, 60여 만 시간밖에 안 된다. 그중에서 자는 시간, 먹는 시간,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기다리는 시간- 등을 빼면 사회적 활동시간은 겨우 60여 만 시간의 삼분의 일밖에 안 된다. 삶을 경건히 살고자해도 마음 같지 않고 노력해도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넘어 최선을 다해도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이르지 못했을 때가 있다. 그때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운명의 알고리즘도 지문처럼 다르다는 것을.

 

하나님은 못 뵈었다. 그러나 마귀는 몇 번 만난 것 같다는 고달픈 생각일 때도 ‘착한 사람’을 말씀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나만 못한 처지를 생각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냥 살자던 아내의 위로가 하늘 같이 그리울 때도 있다. 오늘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일 때 나는 ‘그래도’라는 단어에 힘입어 살아볼 만했던 나의 삶에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대 당신은 삶의 가락을 아시는 분이야!’ 피보다 진하게 살아왔어. 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이 순간을 위해서 하늘의 천사가 아침에 만난 소녀가 되어 나를 기다렸다 ‘몇 살이냐.’ 고 물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것은 누렇게 익은 곡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는 가을 농부처럼 노년을 나만의 빛과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마음공부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철병을 명령하고 죽었다는데 그가 죽기 전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꿈속의 꿈이로다’라는 유언 시를 남겼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군은 진격하라’고 명령하고 계속해서 북을 울리면서 죽어갈 때 ‘적에게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하고 떠났다. 내 나이를 물어온 고운 눈매의 소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내 나이를 세탁하며 정신적인 어둠을 걷어내야겠다. 동시에 긍정적인 맑은 생각, 단정한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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