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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함석헌

 

1901년 3월 13일 평안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곧 탄신 123주년이다. 1916년 북쪽의 영재들이 모이는 평양고보에 입학한다. 수줍고 평범했다. 평고의 연락책으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훗날 사상계에 실렸던 큰 문장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ㅡ1959년 3.1절에 부치는 글ㅡ에 따르면, 그는 전날밤 숭실학교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들고 감격하였다. 평양경찰서 앞에서 뿌리고 시가행진에 참가했다.

 

"내 60 평생, 그날처럼 맘껏 뛰고 맘껏 부르짖고 그때처럼 상쾌한 적이 없었다. 목이 다 타 마르도록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팔목을 비트는 일본순사를 뿌리치고 총에 칼꽂은 일본군인과 마주 행진을 하며 대들었다가 발길로 채여 태연히 짓밟히고 일어서고, 평소 처녀 같던 나에게서 어디서 그 용기가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정말 먹었던 대동강물이 도로 다 나오는 듯하였다."

이 진술은 신생아 분만현장을 연상케 한다. 저 평안도 이름없는 어촌의 소년이 한 집안의 아들에서 세상의 아들로 거듭난 것이다. 학교는 퇴학당했다. 반성문을 써내면 복교할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남강 이승훈의 민족사립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다석 유영모 교장과 특별한 사제관계를 맺는다.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1928년에 모교의 역사교사로 부임한다. 유학기간 동안 일본인들의 멘토였던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 활동을 했다. 그 모임에서 김교신과 친구가 되어 함께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매월 글을 발표했다. 1935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탈고했다. 이후 3년 동안 집필한 세계사는 2023년 '뜻으로 본 인류역사'로 출간되었다.

1938년, 일본말로 가르칠 것을 강요하여 교사직을 그만둔다. 1940년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평양교외로 이주하여 농사학원을 경영한다. 책이 열 수레였다. '계우회 사건'으로 평양 대동경찰서에 1년간 수감. 1942년 '성서조선 필화사건'으로 서대문경찰서에 1년간 투옥. 1943년 출옥하여 평생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다.

 

1945년, 평북자치위원회 교육부장을 맡았는데, 소련군에 의해  수감된다. 해방이 되었으나, 오산학교 반정부전단 살포사건 배후로 또다시 수감된다. 1947년 어머니와 작별하고 서울로 내려와서 YMCA 일요집회에서 강연을 시작한다. 1953년 시집 '수평선 너머'를 냈다. 

 

1957년 천안에서 "씨ᄋᆞᆯ농장'을 시작했으며, 1958년 사상계 기고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수감된다. 1960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그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1961년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이듬해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과 유럽을 여행한다. 1965년 한일회담반대 단식투쟁을 한다.

 

1970년 4월 '씨ᄋᆞᆯ의 소리' 창간하였다. 연세 70에 사재를 모두 쏟아부은 '구국의 저널리즘'이었다. 2호를 내고 인가취소를 당한다. 소송에서 이겨 복간되었다. 박정희 종신집권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한다. 1976년 '현대사의 조명탄 간디'의 자서전을 번역출판했다. 그해 3.1 구국선언으로 징역5년 자격정지5년을 먹는다. 한국인권운동연합회 의장을 맡는다.

 

1979년 퀘이커본부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후보가 된다. 퀘이커 세계대회 참석차 스위스 독일 캐나다 미국을 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되고, '씨ᄋᆞᆯ의 소리'는 강제폐간 당했다. 함석헌 전집 총20권이 간행된다. 1985년 퀘이커회의 추천으로 또다시 노벨평화상 후보가 된다. 이 무렵, 원인 모를 화재로 서재가 다 불탔다. 1987년 담도암 수술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을 맡았다. '씨ᄋᆞᆯ의 소리'가 8년만에 복간되었다. 

 

 

1989년 2월 4일. 영면에 들었다. 


선생의 생애는 20세기 이 민족이 역사에 뿌린 최고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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