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을 통해 진실함을 보여주는 작가 성능경, 솔직함을 통해 저항을 보여주는 작가 이랑이 만났다. 40년이라는 세대 차이를 뛰어넘은 두 작가의 만남은 세대와 성별, 이념, 자본과 노동이란 주제로 공명을 이루며 공통된 예술 세계를 구현한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는 개관 5주년을 맞아 전시 ‘2024 아워세트: 성능경×이랑’전을 열고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2022년부터 지속된 아워세트는 창작자 간 협업을 통한 매체 실험으로 올해는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만나 각자의 작품 세계와 방법론을 조명한다.
성능경(b.1944-)은 1세대 전위예술가로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은 비물질 예술을 실험하는 작가다. 몸과 행위가 중심이 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한국 실험 미술 흐름을 주도했다. 사진·드로잉·행위·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노년에 이른 지금, 삶-공부-예술이 삼위일체하도록 매일의 수행을 작품에 녹여낸다.
이랑(b.1986-)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관통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제14회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상,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등 음악분야의 수상 이력은 물론 글, 만화, 영상,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고통, 가난, 죽음, 불안 등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 솔직함으로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파트 ‘가깝거나 먼’의 주제는 ‘한반도’다.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키워드로서 세대, 성별, 장르의 차이를 떠나 공감을 얘기한다. 분단과 전쟁, 도래하지 않은 통일에 직면한 한반도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전시 작품인 성능경의 ‘백두산’은 버려진 패트병을 쌓아 남북 분단의 과거와 현재,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이랑의 ‘임진강’은 재일동포의 복잡미묘한 정체성·세대·국적을 언어의 레이어로 담아낸다. 1861년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모티브로 한 성능경의 ‘대동여지도: 통일 Korea’는 22첩 244페이지로 재배치해 자유로운 영토를 표현한다.
두 번째 파트 ‘편집술’은 미디어·정치·사회의 맹점을 파고드는 재편집의 기술로서 두 작가의 방법론에 대해 살펴본다. 성능경은 1970-80년대 신문-사진-행위가 연결된 작업으로 비물질(탈물질)을 실험했다. 신문을 오려 순서를 뒤바꾸고 기호를 덧씌우는 작업으로 미디어·정치·사회를 비판한다. 이랑은 거짓과 배척, 폭력과 가난과 같은 현실을 기록하고 노래로 남겼다.
세 번째 파트 ‘분신술’은 전방위로 창작하는 두 작가를 표현한다. 성능경은 사진작가와의 공동작업인 ‘쿠킹호일맨’, 작업의 참조를 밝히는 ‘손씻기’처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한다. 이랑은 글과 앨범, 공연과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활동했고 ‘뮤직비디오 스크리닝’에서 싱어송라이터의 박자와 리듬감을 편집자의 시선과 함께 연출했다.
네 번째 파트 ‘시간예술’에서는 두 작가가 기록과 시간의 경계에서 계속해 창작되는 작업을 소개한다. 성능경의 ‘그날 그날 영어’는 동아일보에 실렸던 생활영어 코너 ‘잉글리쉬 리뷰’란을 매일 읽고, 쓰고, 그리고, 붙인 노년 예술가의 성실한 시간이 담겨있으며, 이랑의 ‘아카이브’엔 작가의 평범한 일상이 노래와 글, 영상, 기록으로 남아있다.
5일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성능경 작가는 “한 사람이 예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형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며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하나의 형식에 의해 예술을 진행하게 된다. 저도 예술의 형식이 완성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작업 방식에 대해 소개했다.
이랑 작가는 “창작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시간이 적게 소요되고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정리하는 것이 시간이 걸린다”며 “태도 자체가 곧 창작자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에 예술가는 바쁜 것 같다”며 예술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세대를 뛰어넘어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8월 4일까지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