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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큰 부끄러움

 

“인간사회에서 슬픔의 종류는 허다하나, 나라를 강탈당한 망국노(亡國奴)의 치욕, 그 이상 가는 슬픔은 없을 것이며, 기쁨의 종류도 허다하나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기쁨이야말로 최고의 환희일 것이다.” 훗날 광복회장을 역임한 독립투사 故이강훈 선생(1903~2003)의 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사》의 첫 문장이다.

 

우리 조상들은 1910년 8월 29일 그날을 왜 망국의 상실감으로 인한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지독한 분노를 담아서 규정하지 않고, ‘국치(國恥)’라고 여기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 후 100년도 더 지난 오늘도 우리는 그날을 ‘부끄러움’으로 상기하며, 그날의 조상들처럼 치를 떤다.

 

힘 없고 가난했지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아무 때든, 어디서고 편하게 누워서 쉬고 또 일하던 사람들이, 필요한 걸 찾아서 궁핍과 남루를 그럭저럭 감당하며 살던 사람들이, 이젠 그 어떤 일도 맘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처량한 신분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들이었다. 그 통한(痛恨)의 시간에, 그 가엾은 족속의 눈에는 빈 쌀독과 대여섯씩이나 되는 처자식의 입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우리 식구들이 머지않아 굶어죽겠구나!", 다들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다리가 풀리거나,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그 아픈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다.

 

어떤 사내는 주저앉으며 고개를 땅에 처박고 흐느꼈다. 그 옆의 동무는 벌벌 떨며 통곡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그의 깨복쟁이 친구가 마흔 살 넘어 또 애를 밴 마누라를 붙들고 오열했다. 맘씨좋은 리장은 말없이 먼 산을 바라보다가 눈물지었다.

 

전국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가련한 장삼이사(張三李四)와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이내 통탄(痛嘆)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우리 새끼들이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믄 안되지“, 하면서 절망을 떨치고 분기탱천(憤氣撑天)했다. 어제는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이 가련했던 일당이 흙먼지 털어내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 보다도 나라 잃은 처지를 부끄러워했다. 고슴도치 가족처럼 처자식만 품고 먹고살기도 힘든 그 엄혹한 시간에 그 붉은 마음은 독특했다. 이 사람들에게 국치(國恥)는 마치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생기는 파문이었다. 그렇다. 자연현상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우리 민족에게 일제 35년은 그 부끄러움을 줄이고 줄여서 끝내 제로로 만들려는 시간이었다. 이는 망국의 슬픔과 절망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정신으로써도 큰 지혜였다. 그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이 민족이 살육을 일삼는 지옥세상에 보여준 고결함이었다. 고품격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관습과 제도에 더이상 밟히지 않으려고, 자식들에게는 결코 그 모욕적인 신분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저 북만주로 떠난 생계형 이주민들을 보라. 그들이 황무지를 일구어 거둔 수확에서 십시일반 내놓은 독립운동자금을 생각하면, 언제나 뭉클하고 눈물겹다.

 

오호통재라! 


오늘 우리 앞에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이 부활하여 100년 전의 야만과 더러움이 재현되고 있다. 그래, 좋다. 자존감 높은 공동체는 부끄러움과의 싸움에서 가장 질긴 법이다. 그  승리가 역사의 진화다.

 

추신: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처럼 올연(兀然)하게 일제와 싸운 선비 독립운동가는 드물다. 선생이 남긴 시 한편을 소개한다. 큰 부끄러움(國恥)을 하늘높은 품격으로 승화시킨 큰 문장이다.

 

천고송(天鼓頌)

 

吾知敲天鼓者 其能哀而怒矣
나는 하늘북 치는 법을 알지. 


그 소리는 능히 큰 슬픔과 분노를 담아낸다네. 

哀聲悲怒聲壯 唤二千萬人起


슬픈 소리는 비장하게, 노한 소리는 장중하게
이천만 씨알들을 일으켜 세우리라.

 

乃毅然決死心 光祖宗復疆土
끝내는 의연하게 죽을 결심으로 
조국을 빛내고 강토를 되찾으리라.

 

取盡夷島血來 其釁於我天鼓
저 오랑캐 사는 섬의 피 남김없이 담아다가 
내 하늘북을 위하여 제사 지내리라.

 

1921년 정월, 국치(國恥) 후 10년도 더 넘은 날, 선생은 스스로 하늘북 치는 고수(敲手)가 되어 망국노의 슬픔과 분노를 가득담은 하늘북(天鼓)을 비장하고 장중하게 울려 이천만 씨알을 일깨워서, 마침내 강도(强盜) 일제(日帝)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선언했던 것이다. 표현은 이렇게 고급하지 못했지만, 이천만 씨알들의 말과 가슴에 품었던 결기는 모두 단재의 것이었다. 역사는 그 에너지를 다시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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