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이 금리를 0.5%포인트(p)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물가 안정세와 내수부진 등 거시적인 여건만 보면 금리를 낮춰도 이상하지 않지만, 불어나는 가계대출이 수도권의 집값 상승세를 떠받치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가 일으킬 부작용까지 살펴야 해 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각)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무리하며 기준금리를 5.25~5.5%에서 4.75~5%로 0.5%p 인하했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에 이뤄진 금리 인하로,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에서 완화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싼 한은의 고민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한은은 다음달 11일 금융통화정책위원회(이하 금통위)를 열고 현재 연 3.5% 수준인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9일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빅컷이 시작됐으니 우리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과 (한은의) 고민도 많이 줄게 됐다"며 "한국의 통화정책이 국내 요인에 가중치를 둘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한은이 고려하는 여러 지표 중 물가, 부동산과 가계부채 등에 대내적 요인에 중점을 두고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내수 회복이 둔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 결정 이후 이례적으로 "금리 결정은 금통위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는 아쉽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국마저 금리를 인하한 만큼, 압박 수위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가 안정 등 금리 인하를 위한 전제조건도 상당부분 갖춰진 상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로 2021년 3월(1.9%)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어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연준의 빅컷으로 역대 최대치(2%p)를 기록했던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1.5%p로 좁혀진 것도 기준금리 인하를 수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는 집값과 가계대출 급증세로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점이다. 한은은 그간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이유로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고집해왔다. 금리를 낮추거나 유동성을 공급해 부동산 상승 심리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사상 최대 규모(8조 2000억 원)로 늘어났으며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2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잔액은 570조 8388억 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2조 원 늘었다.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시행 중인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효과를 11월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다음달 초까지 가계대출 지표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면, 한은이 섣불리 피벗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시장에서도 한은의 피벗이 11월로 밀릴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한은이 대출 억제 정책의 효과를 충분히 확인한 후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의사록에서 확인된 한은의 부동산에 대한 경계심은 시장의 생각보다 큰 것으로 판단하는데, 10월에 인하하기에는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지 않다”며 “한은의 금리인하 시점은 빨라야 11월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자본 유출 압력이 더 낮아졌으니까 금융안정 등 국내 요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며 “미국이 빅컷을 단행했으니 한은도 10월 0.25%p라도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이해하나 그게 10월이어야 하는 명분은 사실 없다”고 평가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