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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뉴스읽기] 대한극장 폐관에 거는 기대

 

충무로 대한극장이 9월말 폐관했다. 대한극장은 1958년 개관 당시 미국 20세기 폭스사가 설계를 맡아 70mm 원본 필름을 그대로 상영할 수 있도록 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빛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한 무창극장이었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한극장은 관객들에게 웅장한 스크린과 생생한 음향으로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필드와 같은 대작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극장의 형태가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쇼핑과 오락, 식사까지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로 바뀌어가자 대한극장도 건물을 철거한 뒤 2001년 12월, 7층 건물에 11개 상영관을 갖춘 지금의 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이 시기에 한국 영화들은 주로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했으며, 외국 배우들의 내한 행사도 거의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대한극장이 영업종료를 알리자 영화의 한 시대가 저물고 추억이 사라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급성장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극장 관객이 현격히 줄었으니 누적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극장 폐관이 순전히 경영 문제 때문이라고 해버리면 그것은 영화사업자의 소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닐까. 대한극장을 설립한 고 국쾌남 세기상사 대표는 다른 사업체를 매각하거나 축소하면서까지 대한극장 운영에 집중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그는 극장이 사람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잊고,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우양산업개발이 세기상사를 인수했던 2021년은 이미 극장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다. 그런데도 대한극장을 인수했다면 우양산업개발은 극장산업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양산업개발은 힐튼 경주 등 호텔업 외 우양미술관도 운영하고 있는데, 대한극장을 인수하며 문화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대한극장은 최근 도심 속 옥상 정원 씨네가든에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으며, 특별히 독립영화를 꾸준히 상영해왔다. 2022년 10월에는 WDG와 함께 7층 11관을 리모델링하여 300석 규모의 WDG e스포츠 스튜디오로 개장하는 등 문화 확장의 시험적 운영을 이어왔다.

 

대한극장은 폐관 후 문화예술공연 시설로 리모델링하여, 2025년 4월 세계적인 이머시브 공연 ‘슬립노모어’와 함께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머시브 공연은 건물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며, 관객은 배우를 따라 다니면서 자유롭게 관람하고 스토리에 참여한다. 즉 관객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소비하도록 짜여 지는 공연이다. ‘슬립노모어’는 2003년 런던에서 초연하였고, 현재 뉴욕과 상하이에서 공연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일했고,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한 이승엽은 극장 경영에 관한 그의 저서 '극장에 대하여'(2020)에서 ‘모든 극장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극장 자체는 지극히 실체적 존재이지만, 극장은 예술가와 관객뿐만 아니라 권력, 시민, 언론, 기업 등 다양한 주체로부터 발현되는 다양한 욕구와 욕망이 현실적인 조건과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실체라고 묘사한다.

 

한국 영화계를 ‘충무로’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대한극장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극장으로 한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런 대한극장이기에 폐관 이후 우리나라 공연 예술계를 어떻게 새롭게 견인해갈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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