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과도한 정치 공방으로 파열음만 빚은 국정감사가 끝나면서 내년도 국가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안 정국을 맞고 있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한 해 나라 살림살이를 다루는 국회 예산안 심사는 국회가 짊어진 사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무다.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올해도 예산안을 성실하게 다루지 않을 개연성이 높아서 한 걱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야 정당이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예산안 심사를 졸속으로 다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31일 예결특위 회의장에서 ‘2025년도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다음 달 7∼8일 종합정책질의, 11∼12일 경제부처 부별 심사, 13∼14일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를 각각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서 18일부터 예산안조정소위 활동을 통해 감·증액을 심사하고,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다.
하지만 지난 국정감사가 시종일관 그랬던 것처럼 김건희 여사 특검법 공방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잇단 1심 선고로 인해 이 같은 국회 일정이 순탄하게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파상공세가 날로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잇달아 나오는 이재명 대표의 1심 재판 결과 또한 후폭풍의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한폭탄이다.
여야 정치권의 김 여사 공방은 다음 달 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감에서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운영위는 지난 16일 야당 단독으로 김 여사와 명태균 씨 등 33인을 오는 31일 국가인권위, 1일 대통령비서실 국감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 김 여사 등이 불참할 경우 동행명령장 발부 등을 놓고 여야의 거센 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내달 2일 서울역 앞에서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를 개최한 다음 14일에는 세 번째로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킬 예정이다. 오랜 시일 수사를 질질 끌어온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혐의에 대해 뒤늦게 불기소 결정한 내린 일을 바라보는 여론은 곱지 않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마저도 출구전략을 외면하는 대통령실 측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중이다.
정쟁을 증폭시킬 요소는 거대 야당 민주당 쪽에도 있다. 우선 이재명 대표 부인 김혜경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가 14일로 예정돼 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온다. 1심 선고 결과를 둘러싼 여야 간 치열한 설전이 예상된다. 열흘 뒤인 25일에는 이재명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도 나온다. 이래저래 국회가 예산안 심사에 공력을 다하기 어렵도록 만들 치명적인 변수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이미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여야가 벌인 최악의 정쟁 파열음을 넘치게 듣고 보았다. 곳곳에서 난무하는 막말과 고성은 차라리 지켜보는 국민을 부끄럽게 했다. 두 쪽으로 나뉜 극단적 분열상은 질의하는 의원들 못지않게 답변하는 공직자들과 참고인, 증인들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질의하는 감사위원들은 구태의연한 정략적 태도를 삼가지 않았고, 답변자들도 국민의 대표들에 대한 전통적인 존중의 예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참혹한 전쟁판이 벌어져 우리 안보까지 위협하고, 국민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제난국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에 여야 정치인들의 도를 넘는 권력 쟁탈전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걸핏하면 입줄에 올리는 ‘민생정치’는 거짓말이 된 지 오래다.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밝혀주리라는 기대는 진작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이 나라에 지금 ‘정치’가 도무지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 정도다.
‘2025년도 예산안’을 국회가 어떻게 다루는지는 이 나라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지속될 것인지를 결정 짓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민생을 휩쓸어갈 쓰나미를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멱살을 거머쥐고 드잡이질만 계속하는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제발 지금부터라도 힘없는 민초들의 삶을 진정으로 헤아리고 보듬는 참정치를 보여주기를 신신당부한다. 지금은 사생결단의 정쟁을 넘어 ‘2025년도 예산안’을 꼼꼼하게 다루는 신실한 국회의 위상을 증명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