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해소를 목표로 꾸려진 ‘여야의정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중단돼 ‘성탄절 선물’로 내놓겠다던 해법은 가뭇한 숙제가 됐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부와 의료계가 상대방이 소화하지 못할 주장들을 따로 펼쳐놓고 시간만 끌다가 돌아선 것이다. ‘여야의정협의체’ 중단은 아무도 책임질 줄 모르는 천박한 한국사회 고질병의 단면이다. 민생은 날로 피폐해지는 판에 ‘해결 의지’ 없는 정치권, ‘사명감’ 없는 의료계 모두 한심한 몰골이다.
국민의힘은 1일 국회에서 여야의정협의체 4차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협의체가 당분간 공식회의를 열지 않고 휴지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의료계가 2025년도 의대 정원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지만,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향후 재개 시점이 막막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휴지기’를 강조했으나 이날 의료계는 ‘참여 중단’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의료계 대표로 참가한 이진우 의학회장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더 이상의 협의는 의미가 없다. 정부·여당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의학회와 KAMC는 협의체 참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여야의정협의체는 국민의힘과 정부,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가 모여 의정 갈등의 시발점인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 왔다. 당초 협의체의 필요성을 수긍해왔던 더불어민주당이 전공의협의회의 강경 주장에 눈치를 보며 불참한 일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반쪽짜리 협의체마저 출범부터 서로 이견을 굽히지 않는 분위기였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테이블에 나선 대표자들이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피차간 양보할 수 있는 영역을 슬기롭게 파악하는 일이다. 내가 양보할 최저 한계를 설정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방의 처지도 함께 헤아려야 대화가 진전되는 법이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수시 미충원 인원의 정시 이월 제한 및 예비 합격자 규모 축소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보류 등을 제안했다. 사실상 2025학년도 정원 확대 백지화를 요구한 셈이다. 상대방의 한계를 무시한 채 전공의협회나 의사협회의 강경 주장을 답습한 셈이다. 이미 한창 진행 중인 입시를 뒤엎고 내년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자는 얘기는 가당찮은 억지다.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조정은 법적 문제가 야기될 것이므로 검토할 수 없고, 2026학년도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견해를 밝혀 왔다. 책임 소재를 불문하고, 내년도 의대 증원은 인정하고 2026학년도 증원 규모부터 정부와 접점을 찾도록 접근하는 게 바른길로 보인다. 이 시점에 강경파에 휘둘리는 게 의사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택인지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찬성 여론이 높은 ‘의료 개혁’의 당위성에 기대어, 심각한 의료 현장 마비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부는 의지를 관철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간호법이 통과됐고, 실손보험 정책 개혁도 앞두고 있다. 의사단체는 강경 입장을 숙고하고, 정부 또한 협의의 끈을 놓지 말고 양보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넓히는 게 지혜로운 길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둘로 쪼개어 나누어 가지라”는 솔로몬의 판결 앞에 두 비정한 어머니가 “그렇게 하자”고 나서는 꼴인 살기 찬 ‘의정 갈등’ 앞에서 민심은 과연 어디로 흐를 것인가. 가없는 힘겨루기로 사분오열 삼매경에 빠진 딱한 나라에서 잠시라도 마음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투병 생활이 고달픈 환자들을 볼모로 한없는 드잡이 행각이라니, 대체 이 무슨 어리석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