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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

한강, 노벨상 박물관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7일(현지시간) 노벨상 박물관 건물에서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강연을 했다.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1979년 8살 당시 지었던 시의 두 연을 읽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은 “시를 지은 지 14년이 흘러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쓰는 사람이 되었다”며 “시 쓰는 일도, 단편 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며 “완성까지는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이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꾸게 된다. 바로 그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며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강은 ‘채식주의자’,‘바람이 온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게 된 배경과 느꼈던 감정들을 설명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집필하며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인공 영혜와 인혜의 삶을 추적해간다.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에서 더 나아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물으며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희랍어 시간’은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또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며 내면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간다.

 

1980년 1월 9살,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한강은 12살 때 서가에서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몰래 꺼내 읽는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과 동시에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은 작가에게 의문으로 남았다.

 

한강은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 달에 걸쳐 매일 9시간 씩 읽어 완독하고 광주 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루는 자료들과 책을 읽었다.

 

이런 노력 끝에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고,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걸었던 것처럼, 망자들과 유족, 생존자들에게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고자 결심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4년 6월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을 꾸면서 집필하게 됐다. 벌판엔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무덤들의 뼈를 옮겨야 한다는 걱정을 하던 찰나 꿈에서 깨어난다.

 

작가는 2017년 12월부터 2년 여동안 제주도에서 월세방을 얻어 서울로 오가는 생활을 하며 소설의 윤곽을 세워간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며 써내려간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왔었다”며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나의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며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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