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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한반도 리뷰] 탄핵의 시간

 

지난 4일 0시 35분,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같은 시각, 수도권에 산재해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전체 297명의 계엄군에 의해 점거당했다. 불과 3시간 전인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함”의 명목으로 대한민국에 44년 만의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방송자막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전체 국민 중 그날 밤을 헌법 제 77조 1항, 계엄 선포의 전제로 명시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믿고 있던 이는 ‘용산’과 관계된 극히 소수의 공무원에 불과했다. 위헌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임기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를 통해 이른바 ‘백종원 1000명’ 육성사업 등을 공언하였던 대통령의 국정인식이 하루만에 국가비상사태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임기 내내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였던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훼손하는 반헌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실정(失政)을 저질렀다. 비상계엄 선포로 비상국면이 조성되는 희대의 촌극. 시간과 방법의 문제일 뿐, 그는 조기 퇴진을 목전에 두고 있다.

 

12월 7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은 집권여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인해 자동 폐기되었다. 이미 국민의 힘 지도부는 이번 탄핵 표결에 대한 당론을 불참식 부결로 확정, 본회의 표결 도중 의원총회까지 개최하며 소속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표결을 방해하였다. 전통 있는 공당의 모습이자 헌법기관 108인의 총의라 보기엔 극히 실망스러운 선택이었다.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가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범죄자들조차 이성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였다면 합리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객관적으로 최적의 선택은 아니어도 그들에게 가치있는 선택, 즉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반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2016년 헌정사상 첫 탄핵대통령을 배출했던 그들은 민의를 수렴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개별 헌법기관이 아닌 당리당략적 사고를 감행했다. 자당에 엄습한 모종의 두려움은 제한된 시간과 사고 내에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최적의 결정을 종용하였을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책망 속에 상대적 정치 무관여층이었던 2030세대까지도 여의도로 불러내었으니 그것은 악수(惡手)였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K-pop으로 무장한 채 장기전에 임할 채비를 마쳤다. 집권여당이 민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도리를 저버린 채 수세적 당론으로 포장된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형국에서 대중들의 시선은 14일 예정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로 쏠리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의 런닝타임 2시간 21분보다 20분 가량 길었던 비상계엄이 해제된 후 6일 美 경제매체 포브스는 ‘윤 대통령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쏟아졌던 수많은 외신보도 중 가장 뼈아픈 소식이었다. 이미 널뛰는 환율 속에 시중은행은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8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성명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확고하게 지킬 것이라 밝혔으나, 그 또한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이름을 올린 1인이다. 국가신용이란 긴 세월 노력과 노력이 포개어져 무형의 실물 가치로 유통된다. 지난 44년이 그러했듯이 이번 계엄사태의 청구서는 국민들과 다음세대가 수십 년에 걸쳐 감당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현 집권여당이 당리당략 처세술로 정세판단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며 거대야당 또한 반대급부만을 누리며 쾌재를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긴요한 것은 특정 공당의 존속여부나 야당 대표의 대선행보가 아니다. 우리 헌정사에 씻지 못할 자상을 남긴 현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조속한 퇴진, 국면수습과 국정 정상화일 것이다. 이는 반복되는 긴급 담화나 약속이 아닌 헌법상 절차와 제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이 자명하다. 지금은 탄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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