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또다시 납품업체에 수수료 덤터기를 씌우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형유통업체 판매수수료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에 부과하는 수수료율이 지난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유통업체 각종 비용의 수취 과정에 불공정행위가 없는지를 정밀 분석해 강력하게 시정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힘없는 납품업체를 약탈해서야 될 말인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태별 실질 수수료율은 TV홈쇼핑 27.3%, 백화점 19.2%, 대형마트 18.0%, 아울렛·복합쇼핑몰 12.8%, 온라인쇼핑몰 11.8%로 집계됐다. 실질 수수료율은 업태별로 대규모 유통업자가 납품‧입점 업체로부터 받은 수수료 금액과 추가 부담 비용(판촉비‧물류비 등)의 합을 상품 판매총액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2022년까진 대다수 업태에서 실질 수수료율 하락 추세가 뚜렷했지만, 작년에는 대부분의 업태에서 수수료율이 상승하거나 하락 폭이 둔화했다. TV홈쇼핑의 경우, 2019년 29.1%였던 실질 수수료율이 2020년·2021년엔 29.2%로 소폭 상승했다가 2022년에는 27%로 2.2%포인트(p) 내렸다. 하지만, 2023년에는 27.4%로 다시 상승했다.
백화점은 2019년 21.1%에서 2022년 19.1%까지 하락했던 실질 수수료율이 2023년엔 19.2%로 상승 전환했다. 대형마트도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9.4%→18.8%→18.6%→17.7%로 매년 하락했으나, 작년엔 18.0%로 다시 올랐다.
백화점은 AK플라자(20.4%)→롯데백화점(19.6%)→신세계백화점(19.4%) 순으로 실질 수수료율이 높았다. 대형마트의 경우 이마트가 19.2%로 가장 높았고, 홈플러스(17.9%), 하나로마트(17.5%), 롯데마트(16.6%) 순이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실질 수수료 격차는 무려 2.6%p나 됐다.
온라인쇼핑몰에선 쿠팡의 실질 수수료율이 29.8%로 가장 높았다. GS SHOP이 11.2%로 2위였고, 카카오(선물하기)가 10.0%로 3위였다. 다만 쿠팡은 납품업체의 상품을 보관·배송하고 고객서비스를 대신하는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커머스 업체의 특약 매입과 차이가 있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납품업체들은 수수료 이외에도 판매촉진비, 물류배송비, 서버이용비, 기타비용 등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태별 납품업체의 추가 부담비용 비율은 편의점(7.8%), 대형마트(4.2%), 온라인쇼핑몰(4.0%), TV홈쇼핑(1.0%), 백화점(0.3%) 순이었다.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많은 유통업체가 경쟁적으로 할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역대급 할인, 최저가 가격 등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소비자들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통구조에서 을(乙)일 수밖에 없는 납품업체는 함께 웃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납품업체의 희생에 가까운 손해가 동반되는 까닭이다.
유통업체가 판매촉진 행사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악습도 완전히 개선된 게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납품업자의 판촉 비용 분담 비율이 5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폐습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방치하면 유통 질서를 무너뜨리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안길 수도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에 담긴 숨은 뜻을 되새길 때다. 관계 당국의 철두철미한 감시와 실효적인 대응책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유통구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은 한시도 중단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