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적으로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이며 사제이니 굳이 말한다면 “예수파” 혹은 “그리스도파”이다. 개인적 성향은 보수적이다. 글쎄 누군가 “당신은 진보요? 보수요?”라고 묻는다면 답을 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나는 보수적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지구상의 물리적 법칙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관성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도 그와 비슷하다. 살아온 방식대로 사는 것이 에너지가 덜들고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힘을 써야 하는데 누군들 변화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어떤 “변화”는 힘이 들어가더라도 내 삶에 신선함을 주고 재미있을 수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삶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발전이라는 단어는 다시 돌아볼 필요는 있다) 또 한 가지는 생활의 불편함을 극복하거나 혹은 좀 더 나은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과학적, 기술적 발전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인류가 아주 크게 진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전기, 인터넷, 스마트 폰 등은 인류의 생활 모습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은 이렇게 말했다: “매체가 메시지다(The media is the message)” 이는 우리가 새로운 매체, 예를 들어 인터넷, 스마트 폰을 쓰면 그 매체 자체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메시지 자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급진적 변화를 갈망하고 이루는 때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외침이 들릴 때이다. 바로 혁명적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 혹은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이 얼마간 지속되면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사생결단을 내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상황을 역사적으로 여러 번 겪어왔는데 지난 12월 3일, 화요일 밤, 바로 그러한 상황이 또 한번 시작되는 순간이 엄습해 왔다. 바로 “비상계엄”이다. 그런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져 우리 시민들은 그런 지옥 같은 상태가 지속될 때 앞선 세대들이 치열하게 쟁취하고 지켜온 민주주의가 말살될 것을 우려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국회로 모여 계엄군을 막아냈고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켜 계엄을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헌재의 심사와 인용을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아직 국민의 짐이 되는 당과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려는 검찰과 기득권 세력이 이 민주주의 물결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질문과 답: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듯이, 과거 민주주의를 지킨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응원봉을 흔들며 춤추고 외치는 “빛의 혁명” 전사들인 2030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울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