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와 불안한 국내 정치상황 등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온다.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로 경기침체 속도가 빨라지고, 널뛰는 환율로 인해 물가까지 흔들리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상승)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12·3 계엄 사태 이전의 국내외 경제 관련 기관이 바라본 우리나라의 2025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는 2%대 초반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로 전망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경제가 2.3%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12·3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적 상황이 급변한 만큼, 성장률의 하방압력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오는 20일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관세전쟁 발발 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1.9%)가 0.2%포인트(p)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대외정세는 급변할 예정이지만, 탄핵 정국으로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외교·국방 등 국정 전반을 총괄해야 한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수습까지 맡게 되면서 경제 현안에 집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30일 'F4(Finance 4) 회의'로 불리는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에 불참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소비자와 기업 등 경제 주체의 심리가 위축됐다는 점도 문제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로 전월보다 12.3포인트(p) 하락했다. 2023년 11월 이후 최저치로 낙폭 또한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3월(-18.3p) 이후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전(全)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도 전월 대비 5p 떨어진 87.1로 집계되며 2020년 9월(83) 이후 최저점을 기록했다.
폭락한 원화 가치도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31일 1472.3원으로 야간거래를 마쳤다. 이는 연말 종가 기준으로 IMF 경제위기(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3년 마지막 거래일과 비교하면 원·달러 환율은 1년 새 184.3원(14.3%)이나 올랐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고환율에 따른 물가 불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예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9%로 10월 이후 두 달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한은은 앞서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고환율 등으로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잠재성장률(2%)보다 실질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목표 수준(2%)를 넘길 수 있다는 것. 물가가 치솟으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이로 이해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가능성도 높다.
금융권은 이러한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 상황이 빠르게 정리돼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언론 등에서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2025년 봄에는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힐 거라는 의견이 많은데, 이런 전망이 맞아도 연초엔 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정치 불확실성이 외국인 자금 이탈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도 “기본적으로 이번 사태가 거시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단기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만약 이 사태에 따른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한다면 환율·금리 상승을 부추겨 거시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