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0대 초반인 지인의 ‘권고사직’ 소식을 듣게 됐다. 이런 일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건 처음이다.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인 줄 알았던 소식을 가까이서 접하고 보니, 우리나라 경제 위기와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 지 피부로 오롯이 느껴졌다.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촉발된 1500원대 환율 전망과 경제 위기, 역대급 고용 불안 등으로 대한민국호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국내 대기업들은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시행하며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새해를 앞두고 ‘조직 슬림화’를 통해 고정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엔씨소프트, SK텔레콤, KT, LG헬로비전, 롯데면세점, G마켓, SSG닷컴 등 기업들은 인원 감축을 실시했고, 이 중 일부 기업은 대대적으로 몸집을 줄이기 위해 역대급 퇴직금과 위로금을 내걸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새해벽두부터 은행권 역시 대대적인 희망퇴직에 돌입했다. 지난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2일 희망퇴직을 통해 541명을 떠나보냈고, 최근 희망퇴직 접수를 마무리한 KB국민은행도 지난해(674명)와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임직원을 떠나보낼 예정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6일, 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올해는 국내 5대 은행의 희망퇴직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더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건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 매출 ‘0’원으로 마감했다는 한 카페 주인은 월세를 내는 것도 힘에 부친다며 한 숨을 쉬었다. 이처럼 지난달 음식점과 유흥업소 등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이 신한‧KB‧삼성‧현대카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4개 카드사의 합산 매출은 28조2045억원으로 전월 동기대비 약 2% 감소했다. 한국은행도 이와 비슷한 통계를 내놨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88.4로 전월보다 12.3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지수는 2022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또 다른 지인은 올해 연말 상여금이 한푼도 없었다며,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받지 못하니 기운이 빠진다고 속상해 했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배부른 하소연일 수도 있지만, 월급만 바라보며 사는 직장인에게 커다린 기쁨이 사라진 일임은 분명하다.
매년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는 암울했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최고조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장년층의 재취업과 이직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많은 이들이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권고사직을 당한 지인은 현재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상황에서 순탄하게 이직에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줌의 희망을 품고서 열심히 오늘을 살아야 한다. 부디 그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주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