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경제가 유례없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었다. 12·3 계엄 사태 등 정치적 불안으로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발(發)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경제의 주축인 수출마저 위축되면서 복합적인 충격을 입은 결과다. 잠재성장률마저 저조해 저성장이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워보이는 만큼,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과 같은 근본적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오는 24일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발표한다. 한은은 지난 17일 배포한 '경제 상황 평가'에서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역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한은의 예고대로라면 24일 공개될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거나 0.1%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2분기(-0.228%) 이후 네 분기째 0.1%를 넘지 못하는 미미한 성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한은이 제시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1.5%) 역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이렇게 장기간 0%대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충격을 입었던 2020년에도 1분기(-1.286%)와 2분기(-2.74%) 역성장한 후 3분기 2.209%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회복했다. 이후 ▲4분기 1.574% ▲2021년 1분기 1.543% ▲2분기 1.344% 등 네 분기에 걸쳐 1∼2%대를 이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IMF외환위기(1997~1998년) 당시에도 충격은 컸으나 곧바로 반등과 회복이 뒤따랐다.
대내외 주요 기관들의 눈높이도 낮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절반 수준인 1%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1%에서 1.4%로 0.7%p 내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 역시 2%에서 1.6%로 떨어졌으며, 추가 하향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 경제가 전례없는 저성장 위기를 마주한 것은 위축된 내수 시장과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의 영향이 크다. 정치 불안으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경제의 주축인 수출이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비상계엄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한 상태에서 관세전쟁이 겹쳐 1%p 하락하는 것으로 전망됐다”고 설명했다.
더욱 큰 문제는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 및 혁신 부족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초반 5% 안팎에 이르던 잠재성장률이 최근 2%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산했으며,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40년 이후 0%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을 넘어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기존 산업에만 의존하고 있었는데, 기존 산업들은 중국 등과의 경쟁에 내몰려 있다"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 1.8%는 우리의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이보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선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지난 3~4년간 순수출이 경제성장에 주는 영향은 거의 0%"라며 "우리 정부가 가장 뼈 아프게 느껴야 할 건 지난 10년간 신산업을 발굴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구조조정을 위한 창조적 파괴와 사회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저성장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