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내란 이후 반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곤두박질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내란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전두환 쿠데타 이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유행했다. 근래의 상황이 전두환 시절을 소환할 정도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계엄선포-국회 대통령 탄핵안 부결(2024.12.7)-탄핵안 가결(2024.12.14)-헌법재판소 대통령 파면(2025.4.4)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탄핵 인용되고 21대 대통령 선거 일정이 확정돼 표류하던 대한민국호는 예측 가능한 항로에 진입하는 듯했다.
그러나 5월 첫날부터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까지 지난 십여 일 동안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진원은 5월 1일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대법원 상고심 선고였다. 대법원은 TV 생중계까지 허용하면서 유죄 취지로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공직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는 일반인과 다르다”고 그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재판과 달리 전원일치가 아니었다. 임명권자의 진영논리로 나뉘었다. 대법원에서 사건 기록을 전달받은 서울고등법원은 파기 환송심 재판을 5월 15일로 잡았다. 법원의 정치개입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이 판결 직후 사퇴하고 다음날 출마 선언을 했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다 같이 사라지게 하는 개헌을 하겠다’는 내용을 출마의 변에 담았다. 대법원 판결부터 한 총리 출마 선언까지 일련의 과정이 짜맞춘 듯 일사분란했다.
5월 3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는 이 판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연휴 직후인 7일 서울고법은 ‘이재명 후보에게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일관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 기일을 대통령 선거 후로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법원 스스로 ‘독립’을 거뒀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가 ’이재명 선거법-대장동 재판 대선 뒤로 연기‘라는 중립적인 제목의 기사와 대비됐다.
국민의힘은 3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선출했지만 이후 10일까지 일주일간은 정당사에 남을 괴행(怪行)으로 점철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김 후보는 대선후보 지위 확인을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하룻만에 기각됐다. 기다렸다는 듯 국힘 지도부는 10일 새벽 2시 김문수 대선후보 자격을 취소했다. 한덕수 후보는 곧바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한덕수로의 후보 교체는 다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원들이 나서 투표로 부결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대선열차는 출발했다. 사법이 정치 위에 군림하려 했다. 일부 정치세력은 스스로 사법에 종속되려 했다. 이재명, 김문수의 환생은 주권자가 살려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치화된 사법부 통제 필요성이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한겨레신문 박용현 논설위원은 12일자 칼럼에서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사례를 들어 법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며 ’검찰은 독립성이란 미명 아래 통제할 수 없는 괴물 권력이 됐다. 법원도 검찰에 가려 희미했을 뿐이다‘라고 진단했다. 사법부가 왜 개혁돼야하는지 설파한 명칼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