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2기 신도시가 자족 기능을 앞세운 도시계획의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택 건설이 불가능한 도시지원시설용지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서 수요 없는 땅으로 20여 년째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 고덕신도시 초입. 신축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잡풀이 무성한 땅이 흉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1호선 서정리역에서 불과 500m 떨어진 초역세권임에도 도시지원시설용지로 묶여 활용되지 못한 결과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평택 고덕·인천 검단·파주 운정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도시지원시설용지 536만㎡ 가운데 올해 상반기 기준 미매각 부지는 167만 5000㎡(31%)에 달한다. 평택 고덕이 60만㎡로 가장 많고, 인천 검단도 40만㎡가 팔리지 않았다.
도시지원시설용지에는 지식산업센터 등 자족 시설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공급 과잉으로 수요가 바닥을 치면서 사실상 외면받는 처지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5월 기준 경기도 지식산업센터 16만 2509실의 평균 공실률은 14%로, 이천(70%), 양주(68%), 오산(39%), 과천(37%) 등은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지 중개업계 관계자는 “버려진 건물과 무성한 덩굴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 주민들도 근처에 가지 않는다”며 “금싸라기 같은 역세권 땅이 흉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3기 신도시에도 같은 우려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2기 신도시에서 도시지원시설용지 비중은 평균 5%였으나, 3기 신도시는 자족 기능을 강조하면서 비중이 11%(500만㎡)로 늘었다.
특히 인천 계양은 도시지원시설용지 비중이 19%(63만㎡)에 달하고, 부천 대장(15%·48만㎡), 남양주 왕숙(9.8%·122만㎡) 등이 뒤를 잇는다. 면적으로는 광명 시흥이 135만㎡로 가장 크다.
토지주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3기 신도시를 자족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산업 수요 부족과 과대 규모로 실현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왕숙 신도시의 도시지원시설용지 비중을 기존 13%에서 9.8%로 줄이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업계에서는 미매각 토지를 주택 공급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매각된 토지 상당수가 생활형숙박시설 등 사실상 주거용으로 전용된 만큼, 자족 기능을 무리하게 강조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소비자들은 아파트만 찾았고, 매각된 업무 용지조차 대부분 오피스텔로 분양됐다”며 “서울 접근성이 낮은 2기 신도시는 은퇴자 마을(CCRC)로, 서울 접근성이 좋은 3기 신도시는 청년층 주택으로 활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