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판과 열연강판에 대한 정부의 반덤핑 관세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철강 시장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수입 물량이 급감하는 가운데 제조사들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서며 ‘시장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철강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이달부터 후판 유통 가격을 톤당 3만 원 인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요처별로 실제 인상 폭은 다르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상승 흐름이 확실히 형성됐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은 지난 4월 24일 정부가 중국산 후판에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뒤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난 8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5만 515톤으로, 전년 동기(9만 7735톤)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철강사들은 상반기 조선업계와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도 인상을 관철시켰으며,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열연강판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달 23일부터는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 최대 33.57%의 잠정 반덤핑 관세가 부과됐다. 업계는 이로 인해 열연 수입 물량 역시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내년 본조사에서도 유사한 수준의 관세가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열연강판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정부가 더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최근 열연 유통 가격을 인상한 것도 이러한 시장 전망을 선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반덤핑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변수도 존재한다. 중국산 후판을 컬러강판으로 위장해 불법 수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동국씨엠 등은 정부에 중국산 컬러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제기한 상태다. 조선업계가 보세구역 제도를 활용해 중국산 후판을 관세 없이 들여오는 점도 시장 왜곡 요인으로 지목된다.
또 인도네시아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 가능성도 경계 대상이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기획재정부 내 반덤핑 전담팀을 신설하고, 우회 덤핑 방지를 위한 시행령 개정 등을 추진 중이다.
국내 건설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운 가운데, 시장에서는 중국발 공급 축소가 가격 흐름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초 감산 계획을 발표한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지난 8월 약 7700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0.7% 줄었으며, 5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중국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446달러에서 480달러로 상승했다.
권지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덤핑 관세의 최종 확정, 중국산 재고 소진, 국내 철강사의 가격 인상 의지 등이 맞물리면서 철강 가격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시도할 것”이라며 “반덤핑 조치는 국내 철강 시장 정상화를 견인할 핵심 동력”이라고 평가했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