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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65년에 다시 만나는 영화의 현대적 의미를 찾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1961년에 만들어져 1962년(박정희의 5.16쿠데타 이듬해) 국내에서 개봉됐다가 1981년(광주학살 직후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국내에 컬러TV 시판이 대대적으로 홍보되던 다음 해) KBS TV 더빙판으로 방송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50대보다 아래 세대에게는 완벽하게 새로운 영화이다. 물경 65년이 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그 어느 영화보다도 우아하고 단아하며 지적인 세련미와 파격의 일탈이 곳곳에 숨어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런 영화를 두고 흔히들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전설적인 고전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트루먼 카포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카포티는 미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특히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법의 소설, 곧 논픽션 소설 장르를 연 인물이다. 故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주연한 영화 '카포티'(2005)는 트루먼 카포티의 팩션 '인 콜드 블러드'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카포티는 1959년 캔자스주 홀컴이라는 외딴 마을 농가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6년간 추적한다.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 바로 전 해인 1958년에 발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트루먼 카포티는 1950년대 미국 사교계의 총아였으며 할리우드의 신진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가 화려한 사교 생활을 이어 가던 중에 겪었던 이야기들을 자전적 스타일로 기술한 소설이다.

 

 

소설과 영화는 크게 다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오드리 헵번)가 자기 멋대로 프레드라 부르는(실은 자기 남동생 이름이다) 주인공 폴 바젝(조지 페파드)은 중년 유부녀 여성 투이(2E, 패트리샤 닐)에게 생활비와 유흥비를 후원받는다. 투이는 폴에게 아파트와 의상을 주고 고액의 수표도 끊어 준다. 폴은 그녀가 스타일이 좋은 여성이라 추켜세우며 감정을 나누고 성적 관계를 맺는다. 일종의 지골로이며 내연남이다. 아마도 트루먼 카포티의 개인적 경험이 투영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소설에는 2E의 존재나 성적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트루먼 카포티는 동성애자였다. 영화의 2E 캐릭터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와 감독인 블레이크 에드워즈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애초에 파라마운트가 블레이크 에드워즈를 연출로 기용한 것은 그가 코미디에 능했기 때문이고 (대표작은 '핑크 팬더' 시리즈이다) 원작의 '다크'한 분위기를 탈색시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가미해야만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을 많이 훼손했지만, 그 같은 '악마적 각색'을 통해 대중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으며 (당시 전 세계 수익 1400만 달러,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그 열 배인 1억 4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벌어들였다. 제작비는 250만 달러, 곧 2,500만 달러였다) 뉴욕의 보석상 티파니앤코를 샤넬이나 구찌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 낸 셈이 됐다. 무엇보다 원작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결말이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주연인 오드리 헵번의 화려한 의상, 특히 나중에 헵번스타일로 불렸던 지방시 의상으로 유명해졌고, 그녀가 발코니에서 앉아 부르는 주제가 '문 리버(Moon River)'가 광고 등에 빈번히 쓰였던 탓에, 영화가 마냥 부드러운 러브스토리인 양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매우 씁쓸하고 심지어 냉혹하기까지 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카포티가 이 소설을 발표한 1958년은 세계가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였다(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중국 내전). 미국은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한 나라가 됐지만 젊은 층은 1920년대의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처럼 자신들 역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고독과 방황에 시달리고 있음을 유행처럼 생각하던 때였다. 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는 뉴욕 맨해튼의 작은 아파트에 살며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녀는 원래는 텍사스 시골 출신으로 수의사인 남편도 있다. 이름도 '룰라메이'였다. 14살 때 닥 골라이틀리(버디 엡슨)의 집에 들어가 동생과 함께 우유와 칠면조알을 훔쳐먹다가 그의 아내가 됐다. 닥은 이미 아이가 넷이었다. 그랬던 룰라메이는 닥의 집에서 뛰쳐나와 할리우드를 거쳐 뉴욕의 여자가 됐다. 그녀는 돈 많은 남자들을 이리저리 만나고 다닌다. 에스코트 걸이다. 첫 장면에서 한 중년 남자가 그녀의 아파트까지 쫓아와 화장 고친다고 해서 50달러를 주었느니 하는 장면은 홀리의 매춘 비용이며 장소는 해당 공간 내 화장실이라는 의미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성적 암시가 많은데 홀리의 매니저 격인 O.J.버먼(마틴 발삼)은 그런 그녀에게 돈 많은 남성을 소개해 주는 일을 한다. 버먼은 홀리의 파티에서 '어빙'이란 여성(세이어 버튼)을 만나는데 당시 백인 보수사회에서는 금기시됐던 트랜스젠더이다. 버먼의 소개로 주인공 홀리는 매주 '씽씽 교도소'에 가서 늙은 남자 샐리 토마토(앨런 리드)를 면회하고 그때마다 100달러를 받는다. 샐리 토마토는 마피아 보스이다. 그는 홀리를 통해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일기 예보 암호를 이용한 지시를 내린다. 뉴올리언스에 폭풍우가 올 것이다, 하는 식이다. 홀리의 이 '샐리 토마토' 일은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홀리는 브라질의 부호 호세(호세 루이스 빌라롱가)와의 결혼에 실패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한 여인의 비루한 도시 성장기이며 섹스를 이용한 '소파 승진' 스토리를 갖가지 상징으로 풀어 놓은, 지독하게 씁쓸한 이야기다. 결코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다만 해피 엔딩 적인 결말은 당시의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전형적인 작법으로 대중 취향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지난 100년간 나온 영화, 그리고 향후 100년간 나올 영화 가운데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장면으로 꼽힐 명장면이다. 새벽의 텅 빈 맨해튼 거리에 세단 택시 한 대가 스크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들어 온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택시에서 내리고 티파니 보석상 쇼윈도에서 보석을 감상하듯 자기 모습을 훔쳐본다. 드레스의 파인 등은 한참 말랐다. 한 눈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봉투에서 빵을 꺼내 한입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오프닝의 이 잔잔한 장면은 사람들을 이 영화에 금방 집중하게 만든다. 오프닝을 통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홀리는 남자 폴 바젝에게 줄곧 얘기한다. "우울할 때 난 티파니 매장에 가요." 그녀는 티파니를 갖고 싶어 한다. 티파니와 군대에 가 있는 동생 프레드와 같이 살기 위해 그녀는 돈을 모으려 하지만 통장에는 매번 몇백 달러가 고작이다. 늘 흥청망청하는 파티와 클럽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화장을 고치러 가는 대가로 받는 돈, 마피아 남자와 대화하는 조건으로 버는 돈이 전부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남자를 만나 부와 신분을 얻고자 한다. 부질없는 인생이지만 풍요로운 자본의 사회가 된 미국에서 자신과 같은 '흙수저'가 살아낼 방법은 오직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 홀리가 자기 아파트에서 연 파티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최고 볼거리 중 하나이다. 1960년대식으로 찍힌 일종의 난교파티 같은 장면으로 홀리 주변은 술과 섹스(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사교계라 명명됐던 미국 상류층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잔뜩 꼬집되 그것을 코미디로 표현해냈다. 현대판 엡스타인 파티인 셈이다. 핸드헬드도 없던 시절에 좁은 공간에서 고정 카메라로 찍었으며 풀 쇼트 위주로, 마치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소동극처럼 연출했다. 연출과 촬영 배우의 연기가 최고의 합을 이룬 장면이다. 영화 촬영의 교과서가 됐다.

 

60여 년 만에 만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오히려 생소하고 낯선 듯, 과거엔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새삼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헛되기 그지없지만, 그 수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현대인의 삶은 냉혹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 영화가 주는 진정한 의미이다. 오드리 헵번이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 '문 리버'에 속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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