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은 경찰서 앞마당 우물에 몸을 던졌다. 휴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그 해 정월이었다. 형사들의 겁박에 시달리던 새댁은 우물로 도망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건 우물가에 벗겨진 고무신 한 짝 뿐이었다. 딸이 남긴 고무신을 보자 새댁의 어미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새댁의 시신은 두레박에 묶여 우물 밖으로 나왔다. 건져 올린 시신 위로 가마니가 덮일 때, 좌익이었던 새댁 남편은 북으로 가고 없었다. 소달구지에 실린 주검이 마을로 돌아왔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곡소리조차 담을 넘지 못하고 마당에 붙어 기어 다녔다. 장례랄 것도 절차랄 것도 따로 없었다. 시신은 관도 없이 덕석에 말아 뒷산에 묻었다. 얼어붙은 뽕밭에 시신을 묻을 때, 늙은이와 아낙네들만 구덩이에 코를 박고 울었다. 개중에는 왜 우는 줄도 모르고 따라 우는 어린 것도 있었다. 사내라고 생긴 것들은 죄다 어딘가로 잡혀가고 없었다. 잡혀가지 않은 사내들은 똥통 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참았다. 똥통에서의 은신은 대나무밭에 땅굴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딸을 잃은 어미는 사내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새벽마다 대나무밭을 들락거리는 것도 어미의 몫이었다. 어미는 사내들이 요강에 싼
자주 듣는 질문이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혹은 답하고 혹은 침묵한다. 간혹 편이 없다고 애써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다. 왜 없는지, 없을 수밖에 없는지, 없어야 마땅한지, 글을 써서 입증하려고도 한다. 그럴 때, 그러니까 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편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인용(引用)’이다. 인용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빌어 나의 생각과 주장의 타당성을 밝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런 만큼 인용에 동원되는 사람과 책과 말과 글귀 또한 다양하다. 철학과 사상, 과학과 예술, 심지어 신화와 종교까지 인용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 인용의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끌고 와서 내 것으로 꾸미는 것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습관처럼, 무언가를 인용하는 사람의 글에는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손쉽게 빌려온 말이나 글에는 생각이 뿌리내릴 틈이 없다. 틈이 없는데 어느 깊이에 공감이 고이겠는가. 공자와 예수와 싯다르타의 말과 글을 날마다 노래한다고 공자와 예수와 싯다르타가 되진 않는다. 백 마디의 인용보다 솔직한 생각 하나에 눈길이 머묾도 그래서다. 편이 없는 사람은 없다. 없다고 하는 순간 새롭게
섬은 수평선(水平線) 위에 뜨고 산은 지평선(地平線) 위에 선다. 수평선에 뜨지만 바다일 수 없는 섬처럼, 지평선에 서는 산 또한 들녘이 될 순 없다. 섬은 섬이고 산은 산이다. 그래서 둘은 외롭다. 타고난 팔자 따라 섞이지 못하고 도드라질 운명이랄까. 그런 점에서 섬과 산은 닮았다. 섬이 바다에 떠있는 산이라면, 산은 들녘에 서있는 섬이다. 지치고 힘든 것들이 섬으로 산으로 마음을 여는 것도 그래서다. 섬 같은 산에 오른다. 갯벌에 찍힌 새 발자국처럼 생긴 산이다. 새 발자국 같은 그것이, 밑으로 함몰하지 않고 위로 도드라지며 간신히 산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세 갈레로 갈라진 발가락 끝이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을 가리키는데, 발톱이 박힌 세 지점에 각기 다른 지하철역이 들어섰다. 지하철 역사의 출입구는 산을 눈앞에 둔 기대감으로 종일 요란하다. 먼 길을 돌아 온 사람들이 세 갈레로 갈라진 발가락 끝에 기대고 산에 오른다. 와우고개는 갈라진 세 발가락의 한 가운데 있다. 산의 옛 이름이 와우산(臥牛山)인 것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소의 해 첫날을 ‘누운 소’의 등허리를 밟으며 맞이한다. 누운 소는 봉우리랄 것도 딱히 없어서,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꼬리가 머리
‘고독’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문학적인 단어 뒤에 죽음을 붙인다고 해서 그 죽음이 아름다워지진 않는다. 고독은 고독이고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전혀 별개인 둘의 관계를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결례다. 죽음을 부르는 것은 고립이지 고독이 아니다. 기억하자. ‘고립사(孤立死)’는 있어도 ‘고독사(孤獨死)’는 없다. 그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집주인이었다. 몇 달 째 월세가 밀리자 주인은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일자리마저 끊기자 베란다에 목을 매고 죽었다. 시신은 바싹 말라붙어 미라 상태가 되어있었다. 주인은 출동한 경찰에게 “처음 봤을 때는 마네킹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유서는 없었다. 그는 방바닥에 앉은 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피를 토한 비닐봉지와 포장이 뜯기지 않은 죽 한 그릇이 옆에 놓여있었다. 수저 대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십년 전 이혼한 아내를 따라간 아들의 사진으로 밝혀졌다. 아들의 사진은 그의 침대 머리맡에도 붙어있었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의 주검은 방 한 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번개탄으로 추정되는 연탄재가 자살을 입증하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선서”(대통령령 제21344호)의 핵심내용이다. 소리 내서 읽다 보면 없는 존경심도 싹튼다. 국민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명예까지 걸겠다는 대목에서는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소방관 같다고나 할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선언문에 적힌 다짐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내는 검찰의 모습이다. 놀랍고 존경스럽다. 1.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찰 임은정 검사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2012년 반공법 재심과 민청학련 재심사건에서 검찰 수뇌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무죄를 구형했다.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찰’이 등장했다. 검찰은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검사로서 체면과 위신을 손상했다는 게
노화는 마모가 아니라 마침입니다. 마칠 수 없는 삶처럼 고달픈 게 또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노화는 생각의 종결이자 살아내는 일의 마침입니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마침이 불쑥 던져질까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처럼 마침 또한 그러하다면 당혹스러울 일입니다. 두 해 전에 처음 통풍을 앓았습니다. 요관을 막은 돌(결석)을 체외충격파로 부수며 통풍의 원인이 신장에 있음도 알게 되었지요. 오른쪽 신장에만 십여 개의 돌이 생겼는데 신장 기능이 떨어져 노폐물(요산)을 걸러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작년에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낭종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참기 힘든 복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위 내시경 시술과 함께 간과 췌장을 초음파로 검사하였습니다. 위가 아니라 간이나 담낭에 결석이 생겨도 복통에 시달릴 수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돋보기안경을 벗으면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치아야 뭐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요. 허우대만 말짱하지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인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예방주사를 맞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병’ 혹은 ‘병원’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두려움의 뿌리에는 병을 앓다 일찍
죽어야 피는 꽃이 있다. 수직으로 아찔한 벼랑 끝에 처절하게 부서지는 꽃이 있다. 부서지고 죽어야 피는 그 꽃은 일터에 핀다. 밤낮으로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굴착기에 무너진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질 때, 십층 높이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딜 때, 피처럼 붉은 땀이 죽음꽃으로 피어난다. 추락하는 꽃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스스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밝힌 이들이 있다. 틱꽝득과 전태일이 그렇다. 베트남 승려 틱꽝득은 1963년 소신(燒身)하였고,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1970년 분신(焚身)했다. 승려 틱꽝득의 죽음은 부패한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 정권을 몰락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청년 전태일의 죽음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발화점이 되었다. 그것이 역사에 기록된 두 사람의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야 할 것은 기록된 죽음 너머에 있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불태워 더 많은 이들의 희망을 살리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졌다.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옷과 밥과 집을 위해 제 한 몸을 불살랐다. 자신의 목숨을 그들의 희망과 바꿨다. 우리가 기리고 계승해야 할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별은 헛것이다. 헛것인 별의 그리움은 아득함에 있다. 보이지만,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함이 그리움을 자극한다. 그런 이유로 별을 가슴에 품는 것은 헛짓이다. 다다를 수 없는 헛짓은 다다를 수 없는 헛것의 영역에 그냥 두는 게 좋다. 헛것의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박힐 때, 사람은 죽고 역사는 병들었다. 오일륙이 그랬고 십이십이가 그랬다. 땅에 박힌 별은 군대를 통솔한다. 살상무기로 무장한 별은 흐린 밤에도 지워지지 않고 빛을 발사한다. 권력을 노리는 자들의 계급장에 박혀 반란을 모의하고 역모를 지휘한다. 휴전선에 있어야 할 탱크부대가 수도를 점령하고, 적군을 겨눠야 할 자동소총이 국민의 이마를 정조준 한다. 오일륙 때도 그랬고 오일팔 때도 그랬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아니, 처벌할 힘이 사법부에 없다. 처벌할 수도, 처벌할 힘도 없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의 기록은 왜곡되고 만다. 파묻힌 곳 어디에도 죽임의 흔적은 감춰지고 없다. 반란에 성공한 별들은 어깨에 붙은 계급장을 제 손으로 뜯어내고 청와대를 향해 진군한다. 삼공화국이 그렇게 열렸고 오공화국 또한 그랬다. 별이 땅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마감한 역사는 요원하지만, 역사의 주역들에 대
할머니가 법정에 섰다. 죄명은 절도였다. 범행 장소는 동네 상점이었고 훔친 물건은 몇 봉지의 빵이었다. 잡혀간 경찰서에서 할머니는 며칠 째 굶고 있는 손자들 때문에 빵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딸은 병들어 누웠는데 집 나간 사위는 연락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딱한 사정이었음에도 상점 주인은 처벌을 원했다. 본보기를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동기 또한 법정에서 다시 진술되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출입기자는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라며 기사를 작성했고 방청객들은 판사의 선처를 기대했다. 하지만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말투는 단호했다.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서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판사는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판결문을 다 읽기도 전에 방청석이 요동쳤다. 돈이 없어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은 가혹한 처벌이었다. 벌금을 내지 못한다면 교도소에 들어가 노역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성토의 목소리가 판사를 향해 쏟아졌다. 손가락질을 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판사는 망치를 두드려 소란을 잠재우고 나머지 판결문을 읽었다. “배고픈 이웃이 거리를 헤매는데, 나는 기름
직업에는 귀함과 천함이 따로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노동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자들이 눈가림용으로 만들어낸 삿된 꿈이다. 그 삿된 꿈에 취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을 참아내게 하려는 마약성분의 처방전일 뿐이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가난은 죄악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가난한 자의 눈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 역시 헛소리다. 용은 개천에서 나오지 않고 강남에서 나온다. 노동자가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강남에서는 집 한 채 사고 팔면 뚝딱 벌어들인다. 성공의 조건은 노력(努力)에 있지 않고 재력(財力)에 있다. 당연히 인격보다 돈이 대접받는다. 2010년,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린 그룹 총수가 254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룹 총수는 벌금 낼 돈이 없다고 배를 내밀었고, 판사는 벌금 대신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허락했다. 벌을 받기는커녕, 그룹 총수는 하루에 5억 원씩 벌금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교도소를 이용했다. 황제노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문제의 사건과 판결이었다. 돈이 서고 사람이 추락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