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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택(擇)

 

 

선택의 연속이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숙일 것인가 치켜들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소리칠 것인가. 마주 잡을 것인가 뿌리칠 것인가. 도대체 어쩔 것인가. 수도 없이 마주하는 갈림길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진로도 믿음도 결혼도 선택의 순간을 비껴갈 순 없다. 꿈도 희망도 명예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도 등장한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려서 죽을 것인가 죽여서 살아남을 것인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18일, 서울은 중공군에게 함락될 처지였다. 후퇴하라는 명령이 전군에 떨어졌지만, 미 공군 중령 러셀 블레이즈델(Russell L. Blaisdell)은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전쟁물자 대신 1069명의 전쟁고아를 C-54 수송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켰다. 김포비행장까지는 해병대 트럭 14대를 동원해 실어 날랐다. 트럭을 징발할 때, 러셀은 상부의 명령이라고 운전병들을 속였다.

 

-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놔두는 것이 군인이라면, 지금 즉시 군복을 벗겠습니다.

 

군사재판에 회부된 러셀 중령이 왜 명령을 어겼는지 묻는 판사에게 답한 대답이다. 대답을 들은 판사는 군법을 어긴 죄인이었음에도 러셀 중령을 처벌하지 않았다. 대령으로 예편한 러셀은 뉴욕주 사회복지부 대표를 지내다 2007년 죽었다. 훗날, 러셀은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으로 불렸다. 상부의 명령을 거역한 군인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육사 8기 졸업생 안병하는 1962년 11월 경찰 총경으로 특채되었다.

 

19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안병하는 전라남도 경찰국장이었다. 그는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역했다. 발포는커녕, 경찰국장 안병하는 부상당한 시위대를 치료하고 음식을 제공할 것을 경찰들에게 지시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직무유기 및 지휘포기혐의’로 안병하를 체포했다. 직위를 해제당한 체 보안사령부에 끌려갔던 안병하는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숨을 거뒀다.

 

- 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

 

경찰국장 안병하가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역한 이유였다. 러셀과 안병하는 명령 거부라는 선택을 똑같이 하였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다짐과 같은 선택이었다. 둘의 선택은 전쟁고아와 광주시민을 죽음의 총구멍으로부터 살려냈다. 똑같이 살려냈지만 그 대가는 서로 달랐다. 대령으로 승진해 뉴욕주 사회복지부 대표까지 지낸 러셀과 달리 안병하는 직위를 박탈당하고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 쓸쓸히 죽었다.

 

또 다시 유월이다. 한국전쟁과 유월항쟁의 바로 그 유월이다. 또 다시 떠오른 유월의 역사는 우리를 향해 묻는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려서 죽을 것인가 죽여서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과연 어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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