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경계에서 분투하는 이들 옆에서 일부 시민들이 구급차의 붉은 경광등을 빛 삼아 떼 춤을 췄다. 사고가 난 걸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유흥을 멈추지 않았다.- 한 신문에 실린 칼럼 한 대목이 끔찍한 이태원 참사를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하네요. 그때 거기에 악마들이 있었군요. 어쩌면 악마는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흑토(黑兔) 새해가 시작됐지만, 세상이 딱히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정초예요. 이 시대 최고의 시사 논객 중 한 분인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가 지난 연말 ‘퇴마 정치’라는 제목의 새 책을 냈군요. 진보 진영에 대한 논리정연한 비판을 서슴지 않아 온 강 교수는 『윤석열 악마화에 올인한 민주당』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도 민주당에 대해서 혹독한 쓴소리들을 늘어놨네요. 강 교수는 일찍이 다른 저서에서 “문재인..
도시공간이 흥미로워 관련된 도서를 읽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 2012년 경기남부지역 통일교육센터 상근직 강사로 2년간 활동했다. 통일교육강의를 하면서 살아온 고향에 대해 무지함을 느꼈다. 경험으로 강의를 이어가기에는 지식이 한참 부족했다. 무지함을 벗어나고자 북한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관련 수업을 듣으며 내가 살았던 공간이 궁금해졌다.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는 시골답지 않는 도시다. 석탄이 식량만큼이나 중요해 탄맥 있는곳에 인력을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1980년대까지 고층건물이 희소하고, 하모니카로 부르는 급조된 단층집이 많았다. 생산에 집중했기에 서비스업이 부족하고 문화생활이 자유롭지 않다. 새로 나온 영화는 명절시즌에 맞추어 방영되는데,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늘어섰다. 뒷거래로 뭉치표를 구매해 야매로 파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유행되었던 음악, 무용, 영화가 흑백화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도시연구는 평양위주로 많았고 지역도시 함흥관련 선행연구가 적었다. 중요하게 식민도시에서 사회주의도시이행 관련 연구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석박사 논문을 함흥으로 준비했다. 함흥을 읽다보니 내가 살았던 고원군 수동구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았다. 함흥은 외사촌형제들이 살고 있고 친언니가 함흥 주변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닳도록 드나들었던 지역이다. 함흥에 있는 ‘도지방총국기능공학교’에서 직업교육도 받았다. 함흥역전과 동흥산구역, 회상구역으로부터 장진, 부전으로 가는 신흥선 기차를 타고 다녔다. 함흥냉면에 원조 ‘신흥관’에서 농마국수도 먹었다. 1984년에 지어진 함흥대극장 앞으로 수 없이 지나다녔다. 함흥에 얽힌 이야기를 담으니 살아온 생애처럼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어온 흔적이 보였다. 아득한 옛날부터 길이 생기고 사람이 모여 도시를 만들어왔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들듯 도시생애를 통해 사람과 사회가 변화해온 과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떠한 이유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을 올리고,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흔적을 남겨놓았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그래서 도시를 변압기에 비유한다. 도시는 새롭게 태어나 성장하기도 하지만 쇠퇴하고 몰락하면서 사라지기도 한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회가 연결되어 도시 성격을 만든다. 사람이 모여 있는 만큼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공간을 지배하고 도시문화를 만든다. 도시와 도시는 비교 가능하다. 개발된 지역과 덜 개발된 지역을 살펴보면 사람과 사회를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시간에 도시가 있다. 공간은 영원한데 사람과 사회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왔다. 색바랜 기억과 지식으로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다. 자연, 사람, 사회 요소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다.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도시기행을 시작한다.
새해 벽두에 정치권에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라는 대형 화두가 던져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한목소리로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진 국회의원을 비롯해 소선거구제의 꿀단지를 품고 있는 기득권 정치인들이 문제다.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주의 극복과 다양성 수렴,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로 떠올라 있다.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현역들은 이제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정치개혁의 골간이다. 윤 대통령은 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지역 특성에 따..
2023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붉은 해가 솟아 오르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한 해의 건강과 안녕, 소망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올해 남북관계는 지난 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노동당 대회 결정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고집스러운 집착을 올 해에도 보여줄 모양이다. 지난해 연말에 있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북한은 ‘강대강’의 입장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자체 힘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하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2년차인 2023년은 북한에게는 정권수립 75주년으로 김정은 통치 성과를 과시해 보고자 하는 기대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국가 실현을 위한 기대는 싫든 좋든 윤정부와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가능..
지난달 29일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가 무심히 여기는 환경에 얼마나 끔찍한 위험 요소들이 숨어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 뜻밖의 사고로 5명이나 되는 귀중한 생명이 스러졌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다. 유사한 방음시설이 경기도에만 무려 70개가 있다니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방음터널에 대한 화재방지 공법 도입과 안전 강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알고도 바로 고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중죄다. 이날 오후 1시 49분께 방음터널을 지나던 한 화물 트럭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으며 큰불로 번졌다. 이 불로 인해 방음터널 830m 중 600m 구간이 모두 탔다. 5명 사망 이외에도 안면부 화상 등 중상 3명, 단순 연기 흡입 등 경상 38명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른하늘 날벼락을 맞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횡액이 나와 가족 중 누구라도 맥없이 당할 수 있는 일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도에서의 방음터널 내 화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 8월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용인 구성구로 연결되는 하동IC 고가도로에 설치된 방음터널에서 승용차에 난 불이 번지며 터널 일부를 태우는 사고가 난 바 있다. 사고 발생 시각이 새벽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이 불로 내부 50m가 소실됐다. 말하자면, 당시의 사고는 방음터널 화재의 위험성에 대한 분명한 경고였던 셈이다. 감사원은 이 사고를 계기로 지난 2021년 말 터널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기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시했다. 국토부도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7월부터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기준 보강을 위한 용역을 진행하는 등 관련 조치에 나섰으나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이번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경기도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 70개의 방음터널이 있다. 이 중 29개(일반국도 7개, 고속국도 8개, 민자고속도로 14개)는 국토부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며, 41개는 도내 14개 지자체에서 각각 관리한다. 위험천만한 것은 이 같은 방음터널들 역시 벽과 천장이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등 플라스틱으로 구성돼 대형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재발 방지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의 시설을 전면적으로 강화유리 등 불연재로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보완시공에 필요한 엄청난 소요 예산이 난제다. 전문가들은 “10m 또는 100m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을 섞어 방음벽을 설치해 불이 급격하게 번지는 현상을 차단하는 것도 하나의 대책”이라고 조언한다.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등 안전설비 설치도 의무화해야 한다. 대형 사고가 터져야만 비로소 들여다보는 법·규정 미비는 고질적이다. 화재 위험이 있음에도 방음터널은 일반터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시설물안전관리법’ 상 안전관리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고, 소방법·화재예방법에도 대상 시설물이 아니다. 미적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경고음이 울렸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무사안일 행정은 확실하게 시정해야 한다.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튼튼하게 고치는 게 지혜다.
2021년에 이어 이어 지난해 두 번째로 치러진 대학입시에서 고등학교 이과 학생들이 문과계열 학과에 대거 지원한 것을 두고 ‘침공’이란 어휘까지 등장했다. 국어에서는 ‘화법과 작문’ 대신에 ‘언어와 매체’, 수학에서는 ‘확률과 통계’ 대신에 ‘미적분’을 선택한 이과출신들이 훨씬 유리한 점수로 인문계열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에서는 그 비율이 80~90%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로기 상태의 인문학에 결정타를 날리는 형국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교육을 폐기해야 하나? 자기 점수를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를 제공하는 등 미세하게 보완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개혁의 차원에서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해 수능 지원 결과를 보면, 표준점수에서 유리한 국어의 ‘언어와..
유년시절은 홀로 서러웠고 혼자라서 두려웠다. 나이 든 지금 나는 다시 그 마음과 두려움으로 살고 있다. 인내와 성실과 용기만으로는 안 통하는 사회의 현실 앞에서 이제는 조금 서러워도 괜찮을 것이요. 내 운명의 주어는 ‘슬픔과 그 에너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아침 깨끗하고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어머니가 보내준 바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정월의 따스한 햇살이 악수하듯 손목으로 내리면 먼저 간 여인의 체온 같다는 생각도 했다. 2015년 일이다. 8월 『사람과 수필 이야기』라는 수필집을 엮으면서 표지화 또한 내 필력으로 그렸다. 문인화로서 커다란 나무 아래 갓 쓰고 수염이 긴 초췌한 노인이 거목을 우러러보는 이미지의 그림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거목으로, 노인을 나 자신으로 비유한 의미화였다. 이 그림을 산뜻한 우편엽서로 만들었다. 출..
‘생각하는 언어’가 삶의 슬기, 철학적 구도(求道)의 전제조건이다. 말이 뜻을 잃거나 잊으면 그 슬기는 허망하게 망가진다. 포털에 오른 ZDNet Korea(제이디넷 코리아) 신문 12월 25일 기사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삼성 서울 서초사옥 인근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집회로... 집회소음이 도(道)를 넘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많다. 업계에 따르면...》 업계의 ‘말’로 주민 생활을 핑계 댔다. ‘한국의 최고 권력’인 삼성이 굽어 살펴 주시기를 갈망하는 탄원서 아닌가. 머리 좋은 삼성이 어떤 속셈을 이렇게 어설프게 표현했을 리 없다. 언론도 기사도 공론(公論)이다. 기자는 공공(公共)을 위하는 자(者)다. 삼성에게도 칭찬 들을 수 없는 글이 기사로 실렸다. ‘눈치껏 하라.’는 핀잔 피할 수 없으리. 이 신문을 갈구려고 이런 서두를 꺼낸 것 아니다. 도를 넘는 무지의 언어가 ‘공론의 장’에 오르고, 누구도 이런 언어현상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상황을 저어하는 것이다. 집회소음은, 그게 심하다면, ‘道(도)를 넘는 것’이 아니고 ‘度(도)를 넘는 것’이다. 무지(無知)를 넘어 ‘아는 체’까지도 지나쳤다. 참을 수 있는 한도(限度)를 벗어난 정도(degree)를 말하고자 했으리라. 아니면, 유교(儒敎) 또는 유학의, 공자님 말씀의 道를 가리킨 것일까? 사람의 뜻은 생각이다. 생각은 말이 바탕이다. 그 말이 어그러진다면 생각도 비틀릴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떤 뜻’을 기준삼아 실존(實存)하고 있을까? 이 시리즈 제목인 심우도(尋牛圖)의 ‘도’는 길 道도, 기량 度도 아닌 그림 圖다. 소(牛)를 찾는(尋) 그림이다. 일(事 사)이나 물건(物 물) 즉 사물의 이름은 정확하고 적확(的確)해야 한다. 바르면서 과녁(的) 맞추듯 (경우에)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公論인 언론과 그 생산물인 기사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공론은 없는 것만 못하다. 언론, 그걸 보고 배우는 이도 있다. 공론의 주인인 독자(수용자)가 가가대소(呵呵大笑)를 넘어 자못 모욕감까지 느껴야 한다면, 사람보다 개가 먼저인 것처럼, 세상이 뒤바뀐 것이다. 어서 내려오라. 요즘은 뜸하지만, 전에 길 걷다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며 소매 붙잡는 ’거리의 도인‘들이 있었다. 道는, 度나 圖도 그렇지만 그렇게 파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그 글자의 뜻(이미지)이 없으면, 차라리 아는 체 말라. 아이들 볼라. 입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 보이스피싱도 피할 수 있는 삶의 지혜다. 소를 찾고 보니, 나도 내 아집(我執)의 과녁인 소도, 일체(一切)가 없더라는 불교설화 심우도의 슬기다. 그 말 ‘소’의 이미지만 남았다. 언어의 모습이며 존재이유다.
2022년의 아쉬움을 달래고 2023년 희망찬 시작을 알리는 새해맞이 제야의 타종행사가 2022년 12월 31일 23시 45분부터 2023년 1월 1일 0시 20분까지 수원시 행궁동 화성행궁 광장 앞 여민각에서 열렸다. 약 5천명의 시민들은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제야 타종에 앞서 음악공연이 열렸고 자정부터는 사랑을 만드는 사람들 봉사회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뜨끈한 떡국도 나눠줘 시민들의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들었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모두 만사여의(萬事如意)하고 형통(亨通)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종교계에서도 신년사를 통해 새해 덕담과 함께 염원을 발표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오늘날 지구촌 중생들 서로 간의 균열과 파열음이 곳곳에서 들려온다”면서 “창과 칼을 녹여서 호미와 보습을 만드는..
20대 초반 나이의 후배와 마포에 있는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루프탑 카페가 보여 들어갔는데 이름이 ‘헤이, 쥬드’다. 주인에게 ‘헤이, 쥬드’ 노래를 청해 흐르게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에게 헤이, 쥬드는 프라하의 봄이야’ MZ세대인 후배, 못 알아 듣는다. 꼰대 소리 듣지 않을 선까지 내 암호같은 말을 해명한다. 영화 ‘프라하의 봄(1989 개봉작)’에 비틀즈의 노래 ‘헤이 쥬드(Hey Jude)’가 나온다. 비틀즈의 목소리가 아닌, 체코 가수 마르타 쿠비쇼바(Marta Kubisova/1942년생)가 자국어로 바꿔 불렀다. 비틀즈가 불렀을 때는 우울한 한 아이를 위한 ‘응원가’였는데 마르타 쿠비쇼바는 국민개혁가요로 바꿔 불렀다. 존 레논의 5세 장남 줄리안 레논이 자주 벌어진 부모의 싸움 때문에 어두워진 것을 본 폴 매카트니가 삼촌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줄리안의 애칭이 주드) 1968년, 발표되어 ‘예스터데이’와 함께 비틀즈 최고 명곡이 된 이 노래는 그해 체코 ‘프라하의 봄’ 속에서는 민중 개혁가로 퍼진다. ‘프라하의 봄’은 체코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나치 독일 점령 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구원이 되어준 소련은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지배자로 둔갑한다. 1948년, 공산당이 전권을 장악하면서 일당독재 전체주의 사회로 나아갔고 1960년, 사회주의 헌법 채택,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국명 변경하며 국민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을 살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68년 1월 출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민주 자유화 노선을 채택한 알렉산더 두브체크의 개혁은 민주 시민들의 환호를 불렀다. 그러나 동토를 녹일 것으로 기대했던 프라하의 봄은, 민주화 물결이 이웃 동구권으로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소련의 군홧발 아래 짓이겨진다. 68년 8월, 바츨라프 광장의 시민 평화 시위는 소련군이 밀고 들어온 탱크와 총성에 의해 피로 물들며 좌초된다. 체코 국민 작가 밀란 쿤데라의 명작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좌절된 체코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 체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다. 미국 감독 필립 카우프먼은 이 소설을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국민 가수 마르타 쿠비쇼바는 68년, 프라하의 봄에 이어 89년, 벨벳 혁명 때도 헤이, 쥬드를 민주주의를 꿈꾸는 개혁의 노래로 불렀다. 쿠비쇼바의 목소리, 체코어로 불린 ‘헤이, 쥬드’는 영화 ‘프라하의 봄’에도 나와 영화의 세계적 히트와 함께 체코인의 민주화 염원을 세상에 알렸다. ‘삶은 내게 너무 무거운데 당신에게는 너무 가볍군요’라는 영화 주인공 테레사의 명대사를 떠올리며 노래를 듣는다. 헤이, 쥬드는 겨울을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옛날 노래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