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하고 위험한 근무환경에 노출돼 있다. 조리 때 발생하는 매캐한 연기와 청소할 때 사용하는 독한 세정제 증기를 들이마시며 일을 해야 한다. 인력도 부족해 이른 바 ‘만성골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폐암에 걸리고 끝내 숨지는 경우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는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에게 “급식 노동자가 업무에 시달려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기 위해 성실이 일했으나 지금 골병에 시달려 죽음 앞에 놓여있다”며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임태희 교육감 출근을 저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배치기준 테스크 포스 정상화 ▲대체인력제도 개선 ▲안전보건관리체계 확립 등이다.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4월 27일에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주최 ‘경기도내 학교급식실 집단 산업재해 고발 기자회견’이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당시 광명시 한 중학교의 급식실 노동자가 이렇게 절규했다. “튀김·볶음 조리 때는 3시간 가까이 가스·연기·열기·수증기·기름 냄새를 다 마시고 조리 후에는 대형 부침기와 볶음 솥이 식기 전에 화학약품을 발라가며 세척하면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속이 메스꺼웠다”고.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급식노동자들은 작업 도중 쓰러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행한 ‘조리 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학교급식 종사자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보고서를 보면 심각하다. ‘고온의 튀김·볶음·구이요리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엔 미세먼지와 1급 발암물질인 벤젠·포름알데히드 등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 성분을 국제암기구는 발암 발생 가능물질로 분류한다. 실제로 몇 해 전 수원시 모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조리실무사가 폐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던 중 사망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던 조리노동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안양시의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청소작업을 하던 조리실무사도 중 락스 중독으로 쓰러졌다. 이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현재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신청은 총 64건이다. 이처럼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지만 급식실 유해요인은 제거되지 않고 있다. 학비노조 측은 급식 노동자 사망의 핵심 원인은 인력부족이라고 주장한다. 공공기관 급식노동자의 식수인원은 한 사람당 70명이지만 교육청은 150명이라는 것이다. 이에 학비노조 경기지부와 경기교육청은 급식실 적정인원 배치를 위한 ‘배치기준 테스크 포스’를 구성했다. 그러나 노조는 교육청이 면피성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육청이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산재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들이 불합리한 계급 사회를 배우고 있다’는 이들의 외침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도 생명력이 깃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1인 가구가 늘고 이웃 간의 단절현상이 심화되면서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민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농식품부에서 발표한 ‘2020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서는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가 638만 가구였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 313만 가구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이제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애완’이 아니라 ‘반려’로써 인간의 가족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면 가족을 잃은 것처럼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죽으면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폐기물관리법 제2조는 동물의 사체를 생활폐기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폐기물로 취급하는 법 때문에 반려동물의 사체를 자기 땅에 묻는..
애견 간식이 배달됐다. 가격은 종전과 같은데 크기가 줄었다. 점심시간, 1만 원 미만으론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쉽지 않다. 휘발유 1리터 가격이 2100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고속도로엔 시속 80~90km의 ‘정속’ 주행 차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고(高)물가 시대, 일상의 한 모퉁이다. 한편, 주가 급락에 따라 증시엔 신용반대매매 리스크가 커졌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가계엔 이자 부담에 비상이 걸렸다. ‘빚투’에 나섰던 젊은이들의 곡소리가 심상치 않다. 전기요금도 인상될 예정이다.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에선 ‘최저임금 동결’을 주창한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이기주의적 발로의 주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28일, 경제수장인 추경호 부총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임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물가가 연쇄 상승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과도한 임금 인상’은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한다. 십분 이해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물가상승에 걸맞은 임금인상이 확보돼야 경제도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최저임금 인상’에 줄곧 비판적이었던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기자들도 고물가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엔 동아일보가 4.7%를, 지난 4월엔 중앙일보·JTBC가 기본연봉 6% 인상을 결정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물가상승률 4.7% 전망”, 추 부총리의 “6~8월 물가 6%대 예상” 수치와 맞아 떨어지는 임금인상률이다. 예년엔 물가상승률이 2%대여서 임금인상률도 2%대였다.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4.7~6%대여서 그에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위기 상황서 경제주체 한쪽의 일방적 희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때엔 노 젓기(Rowing)보다 방향잡기(Steering)를 잘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가 재벌 대기업에게 법인세를 인하해주면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법인세는 인하하지 않은 정책은 그 방향이 잘못됐다. 공감하기 어렵다. 사내유보금을 켜켜이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에겐 법인세 인하보다 신규 투자를 위한 ‘규제 타파’와 ‘원스톱 행정서비스 제공’이 급선무다. 중소기업 경영난 해결을 최저임금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인력난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이 대기업보다 열악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정부는 세세한 개입보다는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미래대응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정부는 경제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줘야 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국내보다는 국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정부는 외교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전쟁의 위기를 자극해선 안 된다.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이 수시로 바뀌어서도 안 된다. 정책실패 최소화와 정부신뢰 제고… 고물가 시대에 필요한 ‘방향잡기’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이후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참여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위축된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정경제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고, 선진국의 긴축 재정정책은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 상태에 있고 몇몇 국가는 디폴트 직전이다. 과연 한국 경제는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IPEF 참여는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상황을 악화시킬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지경학적 분열’ 현상이다. 세계는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진영과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 또는 강화하는 진영으로 양분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IPEF의 출범은 지경학적 분열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IPEF가 러시아 진영에 속해 있는 중국의 고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난 30년간 ‘통합’의 힘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제 규모를 3배로 늘렸으며, 십 수억 명의 극빈층을 구제하였다. IMF 조사에 의하면, ‘지경학적 분열’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그간 누려온 수출 증대 및 기술 노하우 습득을 통한 부의 축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부담과 혁신 파트너 상실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분열’은 고소득 전문가, 중소득 제조업 종사자, 저소득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득 계층에 피해를 준다. 특히 기술 부문의 ‘분열’은 관련 국가의 GDP를 5% 감소시킬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공급 사슬을 새롭게 재구축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투자장벽으로 인한 비효율로 인하여 통합 이전의 ‘결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지경학적 분열은 기업 경영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미국의 금리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경학적 분열이 가져올 시장의 축소와 그로 인한 매출 및 이익 감소 우려 또한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과 지속 가능 경영이다. 기업 경영자는 ‘탈통합’에 선제적으로 앞장설 필요는 없다. 기존의 글로벌 ‘통합’의 이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서서히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긴 호흡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수출 및 수입의 다변화 정책을 통하여 공급 사슬 재구축의 소프트랜딩에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강대국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맞추어 대응하여도 늦지 않다.
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신하곤 한다. 무릇 사익에 빠진 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돕지만 나중에는 미워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법이다. 신의와 함께 지혜가 공직자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역설하는 역사적 사례도 넘쳐난다. 나라를 망칠 군주는 겉보기에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고, 간신 역시 충신처럼 위장하니 제대로 사람 됨됨이를 살필 일이다. 역사는 지혜를 갖춘 권력자의 작은 善은 큰 선을 불러오지만 어리석은 자의 작은 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가르친다. 중국의 西周 왕비 포사가 나라를 망친 것도 유왕이 지혜를 못 갖추고 그녀의 작은 즐거움에 집착했던 탓이다. 결국 나라는 망해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고 유왕 자신도 참극을 당하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지난 3월25일자 '공동선' 참조) 오늘의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자신이 전임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을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이를 배신해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다. 나아가 검찰 조직을 진두 지휘해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를 도륙을 내더니 대통령이 된 이후는 아예 검찰공화국의 건설에 몰두하는 듯하다. 또한 그 부인은 엉터리 논문에 허위 이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도덕적 기준을 넘어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법과 원칙’ 적용 기준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도덕적 틀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새 정부에서 신뢰는 누구에게 구할까? 개인이나 법인, 특히 모든 권력은 유한한 생명체이다. 언젠가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시민들의 어깨가 이제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기본적 신의마저 저버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일이 우리 역사 앞에 놓인 것이다.
할머니가 앉았다. 시장 입구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한다. 생김새만 보아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 같다. 생김새만 닮았을 뿐, 저렇게 작은 천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은 라면 박스 위로 비가 들친다. 할머니 발치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도 비는 어김없다. 상추랑 쑥갓은 이천 원이고 고추는 천오백 원이다. 파란 바구니가 상추랑 쑥갓이고 빨간 바구니는 고추다. 빨간 바구니는 파란 바구니보다 작다. 할머니의 굽은 어깨도 비닐을 씌운 우산보다 작다. 우산을 씌운 비닐을 타고 빗물이 줄줄 흐른다. 비닐 안쪽은 할머니의 입김으로 뿌옇다. 비 오는 날의 하루가 뿌옇다. 할머니 앞에 아주머니가 앉는다. 두부가게 아주머니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하는 할머니에게 콩물을 건넨다. 콩물 담은 바가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으..
“‘기자’ 대신 ‘기레기’를 요구하는 자본”. 지난 6월 14일 KBS 아침 뉴스 한 꼭지의 제목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KBS의 우리은행의 라임주가조작 관련 보도와 호반건설의 ‘2세 일감몰아주기’ 관련 보도에 대해 두 기업에서 해당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고 개인재산 채권가압류를 신청했다. 겁주기를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 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이 나온다 해도 담당 기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재벌기업의 언론 장악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30년 전에 ‘김중배 선언’이 있었다. 1991년 동아일보는 두산에 의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집중보도했다. 대광고주 두산은 동아일보 사주를 통해 집요하게 보도 통제를 시도했고 이에 저항하던 김중배 편집국장은 결국 사퇴한다. 그 퇴임사가 바로 ‘김중배..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여전히 매끄럽지 못하다. 정치신인이 정권을 잡은 현실 때문에 어느 정도 혼선과 부실이 불가피하리라는 예측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국내외적 환경이 험궂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마저 여야의 강경 대치 국면을 무한정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정운영에 불협화음이 불거지는 모습은 분명히 국민의 걱정거리다. 행정부가 원활한 국정운영 시스템 안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움직임에 반발하여 임기종료를 며칠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권고한 경찰국 신설안을 그대로 수용하자 이에 반발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흘 전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놓고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질타하고, 대통령실이 즉시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의 인사 검증 동의서를 받는 등 압박이 가해진 끝에 일어난 불협화음이다. 이른바 검수완박법이 올 9월부터 시행돼 경찰의 기능과 역할이 큰 폭으로 확대되는 만큼 새로운 경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방안이 마련돼야 할 계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권력에 예속된 경찰상을 혁신하기 위해 지난 1991년 옛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을 분리했던 역사를 고려하면 이 문제를 이렇게 성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대통령실의 엇박자 노정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노동정책과 관련된 전혀 세련되지 못한 정책추진 과정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 만에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뒤집은 일은 정책 방향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도무지 호흡이 맞지 않는 정부의 허술한 행정과정의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이처럼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잡음을 빈발하는 것은 여러 요인을 상상하게 한다. 그 첫 번째 문제점은 윤석열 정부가 뭔가 시간에 쫓기는 듯 지나치게 서두르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바뀐 정권이 정책을 바꾸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집권 초기에 제대로 된 포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정이란 아무리 신속하게 하더라도 지나치게 소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집권 초기인데도 승리감에 취한 채 일찌감치 긴장감을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시기에 닥친 국내외적 환경은 결코 녹록한 형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먹구름이 돼버린 세계적 경제 위기가 몰고 올 민생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가 이렇게 엉성한 팀워크를 노출할 여유란 조금도 있지 않다. 이런 정도의 느슨한 실력으로는 물가·금리·환율 등의 복합 경제 위기, 퍼펙트스톰을 슬기롭게 대처하기란 버거울 것이다. 굳이 정치신인 대통령의 집권이 아니더라도, 정권 초기 손발을 맞추는 시기에 일어나는 어느 정도의 잡음과 실책에 대해서 민심은 당분간 야멸차게 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부 불협화음과 원만하지 못한 국정운영이 지속될 경우에 닥치게 될 민심 이반은 예측을 벗어난 혹독한 국가적 불행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닥쳐오는 난제들을 유능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빈틈없는 국정운영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장마철에 열대야가 겹쳤다. 비 소식이 그치지 않고, 연일 6월 최저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장마철에는 식중독, 신경통, 호흡기 질환 등이 늘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도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실수가 잦아진다. 꿉꿉한 공기와 제대로 마르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끈적해지는 습도에 불쾌지수도 올라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고, 일조량이 부족해 불면증과 우울증도 짙어진다.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고 다닐 만한 시기다. 그러나 장마철에도 여행은 계속된다. 삶의 모퉁이에서 연속된 불행이 잠시 멈추고 숨 고를 시간을 주지 않듯 날씨도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며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맑은 날을 안겨주진 않지만, 삶처럼 여행도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 비가 내리는 날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실내관광지다.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식물원, 온실, 실내 물놀이장, 찜질방, 실내 동물원, 아쿠아리움에 카페, 원데이 클래스 체험, 영화나 공연까지 실내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내관광지에서 실내관광지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실내형 여행’은 쾌적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송보송하고 청량하게 유지한 곳에서 여행을 즐기다 보면 치솟았던 불쾌지수도 사그라든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만 가능한 여행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면 길을 떠난다. 우비를 입고 방수가 되는 신발을 신은 채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떨어지는 물을 보러 간다. 비 오는 날의 폭포는 장관이다. 평소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벗어나 자연의 위엄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간다. 비 오는 날의 숲은 소란스러운 동시에 고요하다.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해진다. 식물들은 온몸으로 비를 받아들이며 초록을 내뿜고, 동물들도 숨죽여 비를 맞이한다. 숲은 빗속에서 생명력을 발산하고, 숲을 찾아간 사람은 맑은 날과 사뭇 다른 길을 걷는다. 비 오는 날은 준비할 게 많다. 신발과 옷을 못 쓰게 될 수도 있고 안전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꿋꿋하게 빗속으로 들어간다. 비를 맞고, 비의 향을 느끼고, 비와 함께 숨을 쉬며 그 시간을 온전히 체감한다.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경치를 발견하고 맞이하며 새로운 시선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궂은 날이 이어진다. 뉴스와 신문을 보며 한숨만 뱉는 사람부터 묶인 자금에 가슴을 움켜잡는 사람까지 인상을 찌푸린 사람이 늘어간다. 피하든 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든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장마철은 해마다 돌아오며, 무사히 버텨낸다 해도 이후엔 폭염과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시기든 그 시간만의 새로움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자연형 여행작가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공기업들이 지난해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18곳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인데도 임직원들에게 총 1586억원의 성과급을 줬다.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도 각각 772억원, 110억원의 성과급을 나눠가졌다. 사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한계공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가능한 이면에는 문재인 정부가 평가지표에서 ‘경영실적’ 점수 비중은 낮추고 ‘사회적 가치 구현’ 비중을 높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350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30만 7690명에서 지난해 41만 6191명으로 10만 8501명(35.3%)이나 늘었다. 공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먼저 경영평가시스템을 개편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영 평가 항목 중 전 정부가 대폭 높인 사회적 가치는 배점을 낮추고 경영 성과 배점을 다시 높여야 한다. 이와관련해 경영평가시스템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동안 공기업의 부실 또는 방만한 경영이 이뤄지게 된 동기를 보면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권코드’에 맞는 평가항목이 새롭게 들어가고 또 평가 비중에도 변동성이 확대된 탓이 크다. 정권이 바뀌어 눈높이가 크게 달라지면 경영 안정과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다. 윤 정부는 전 정부가 과도하게 비중을 낮춘 재무 부문을 조정하되, 5년후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이번에 달라질 경영평가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도록 공익적 가치와 재무상태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기관장에 대한 철저한 실적평가가 요구된다. 공기업 기관장은 일반 행정부와는 다르게 정권의 전리품처럼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무시된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했다.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정무적 인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선 과정에서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고, 임명된 이후 CEO평가를 보다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특히 정치인 출신들의 기관장 인선에서 예전보다 훨씬 높은 잣대로 전문성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다행스럽다. 셋째 책임과 함께 공기업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공기업의 부실한 경영 내용을 보면 자원외교,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임원 인사 등 역대 정권(청와대)이나 해당부처에 과도하게 예속된 경우가 많았다. 또 기관장과 손발을 맞춰야 할 일반 상임이사 인선 등에서도 외부 입김이 강해 인사가 왜곡되거나 늦어지는 파행 사례가 많았다. 큰 방향에서 정부와 호흡을 맞춰야 하지만 공기업과 기관장의 재량권이 대폭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끝으로 공공기관 개혁은 정부, 정치권 등 다른 부문의 혁신이 동반돼야 저항을 줄이고 추진 동력을 배가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