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관련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혀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질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칩4’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미국이 4개월 전 제안한 서방 국가 중심의 반도체 동맹 결성이다. 중국의 강한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사드 보복’을 넘어서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등장하고 있다. 정부는 정교한 대책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칩4’ 가입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다수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들어가지 않은 채 기존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압박과 견제 수위를 높일 게 분명한 중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진작부터, 중국..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 니은 하고 부르는 그 기역(ㄱ) 말이다. 기역자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있는데, 방문 앞으로 길게 누운 마루가 방과 방을 이어주는 길 같다. 방이 아니라 섬이었다면 섬과 섬을 이어주는 물길 같았을까. 그러든 말든 마루는 개의치 않는다. 지붕에 앉힌 기와가 그러하듯 마루 또한 기역자 모양 따라 반듯하다. 도시의 기와집은 어떠할까. 산 아래 터를 잡은 시골집의 하루는 기와 끝에서 떠올랐다가 마루 끝에서 저문다. 처마 밑에서 일어났다가 툇돌 아래 눕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다남쪽의 기와집은, 처마 끄트머리의 기울기만큼 허락하고, 마루 끄트머리의 넓이만큼 보듬는다. 거절하고 밀어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은 툇돌 보다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그늘은 마루보다 낮은 곳을 욕심내지 않는다. 빗방울도 낙엽도 그윽한 달빛조차도 예외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 정책 경험이 전무하고, 정상윤 차관은 국무조정실 출신, 이상원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이처럼 장관·차관·차관보가 모두 교육행정 무경험자로 이뤄진 경우는 과거 정부에선 거의 없었던 일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8월 4일자 A12면에 실은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교육 정책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하나하나가 민감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데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교육계의 비판 목소리도 같이 전했다. 윤 정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조선일보 보도로는 이례적이었다. 박 장관을 꼬집어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전문가로 통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로 2007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 시행됐다. 경영평가단은 실적 부진 기관장 해임건의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 된다. 박 장관은 2017년 경영평가 단장(문재인 정부 시절)으로 2016년(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를 총괄했다. 이전에도 부단장 3년 등 10여년 동안 공공기관 평가를 맡았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지배주주다. 정부 정책을 따르는 건 숙명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공공기관이 전임 정부 시절 수행했던 일을 희생양 삼아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한다. 언론도 부화뇌동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평형 84㎡보다 두 배 넓은 공공기관장 집무실 전국에 3곳’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한국일보 8월 2일자 기사가 전형이다. 공공기관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 찍힌다. 이 기사는 “차관급 집무실 99㎡보다 넓은 기관도 99곳으로, 기재부가 재배치 계획을 내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장·차관보다 면적을 적게하라 것이다. 권위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필요할 수는 있으나 우선순위는 아니다. 많은 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마치 강남과 지방의 아파트를 동급으로 분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직원수 3만, 2만이 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나 한전 같은 기관과 군소 기관을 일률적으로 평가해선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시절 이었던 2015년, 2016년, 2018년 여름철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인하된 요금만큼 한전 수익은 떨어졌다. 수익에만 매달릴 수 없는 공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누가 한전을 적자기업으로 내몰았나?’라는 한국전력 강릉지사 노동조합이 내건 펼침막 주장에 누가 ‘아니다’라고 답하겠는가? 기재부는 자신들이 이끌었던 공공기관을 향해 ‘왜 그쪽으로 갔느냐’고 질타한다. 이율배반이다. 박순애 장관 같은 경영평가단은 당시 정부 정책을 잘 따랐다고 높은 점수를 부여했을 것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언론은 이런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 팩트 없이 ‘신의 직장’, ‘방만 경영’ 같은 감정적인 기사로는 안 된다.
오는 28일 뽑는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 대표 순회경선이 진행중이다.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뒤 치러지는 이번 전당대회는 당의 활로를 모색하며 차기 대선승리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도전이다. 그런만큼 당 쇄신을 포함한 비전제시와 인물 대결로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순회 경선 시작 단계부터 불거진 ‘기소 시 직무정지’ 당헌 개정 논란은 우려를 낳고 있다. 민주당 당원 청원 게시판에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당헌(80조)을 고쳐달라는 청원이 공식 답변이 필요한 5만건을 넘어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당 안팎에서 ‘이재명 의원의 방탄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당내에서는 ‘정치보복성 수사’의 칼날이 이 의원을 비롯해 야당 인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향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특히 대선과정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받으며 수사 선상에 오른 이 의원의 지지층 입장에서는 그런 걱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내에서조차 특정인을 위한 ‘방탄용 개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검경수사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지지층에 따라 분명 온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당헌 개정 논란을 바라보는 보통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시점이나 맥락에서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재명 의원은 대선패배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단계부터 방탄용 논란이 있었고 이번 당 대표 출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부산시장의 성 비위 문제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당헌 개정으로 무공천 원칙을 훼손하고 결국 패배했다. 지금은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해야 할 시간이다. 국민의힘이 당권 문제로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야당은 자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되찾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또다시 ‘반사이익’이나 ‘내로남불의 공생관계’에 안주한다면 최근 일부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를 보낸 민심이 ‘역시나’로 돌아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당 당헌 당규 개정을 논의하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하급심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을 경우’ 등으로 수위를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사법부의 잣대가 야당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보인 게 현실이다. 정말 야당이 된 처지로서 당헌 당규 개정을 고치지 않을 수 없다면 당 전체는 물론 국민눈높이에 최대한 접근하도록 내용과 절차 등을 고심해야 한다. 민주당내 유력한 정치인인 이재명 의원은 최근 순회 경선에서 “상대의 실패를 기다리는 ‘반사이익 정치’를 하지 않겠다” “국민이 흔쾌히 선택할 정당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 지금 당장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제1의 가치는 쇄신이다. ‘혁신으로 홀로서기’하는 강력한 야당을 기대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들이 투자유치를 통해 사업화를 본격화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내원하는 환자와 앱으로 연결하여 원격진료를 한 후 처방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주기적으로 파악하며 일상 속에서 건강관리를 자문해주는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체성분, 수면 등 개인의 일상기록자료를 기록하고 건강 미션을 제공하는 등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전국민의 병원 데이터를 표준화해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비대면 진료와 연계된 고령 친화적 만성질환 관리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으며 운동·수면·혈당 관리 등의 서비스를 개인 맞춤형으로 관리해 사용자에게 제공될 예정이다.현재는 법률상 전문 의료진만 의료행위가 포함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의료행위가 한시적으로 허용되어 의료행위를 포함하는 비대면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에 제약이 따르지만 스타트업 기업들이 전문 의료진이 개입하는 건강관리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동안 건강관리서비스는 비의료 행위에 대해서만 사업화가 가능했으며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그 수준이 높지 않아 동종 업체에서 따라 하기 쉬운 편이어서 사업성이 낮은 사업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산업계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 수행을 위해 비의료 부문에서 인증 기업을 모집하고 있다. 스마트 돌봄 사업에서는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사용하여 문화 소비생활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액티브 시니어나 중장년 등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의 일상생활, 주거환경 및 건강정보를 수집·분석하여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시니어들의 건강증진을 통한 행복 추구는 물론 노인성 질환, 호흡기 질환 등의 발병징후를 온라인상에서 진단해줌으로써 질병 예방과 건강 개선을 통해 지역의 사회적·경제적 가치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에서 다양한 돌봄 서비스와 플랫폼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요양병원, 요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기저귀시스템을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마트기저귀시스템이란 전도성 섬유나 잉크와 같은 센서가 삽입된 기저귀에 배설정보를 감지하는 통신단말기를 부착하여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에게 기저귀 교체 알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적기에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배뇨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관리, 존엄케어는 물론 간병인들의 업무 경감과 기저귀의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서비스와 같은 타 시스템과 연계하여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 일부 기기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만 디지털 헬스케어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헬스케어 서비스는 진단과 치료에서 예방과 관리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해 가고 있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법률적 근거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스마트 돌봄 서비스 사업에 대한 소셜벤처 등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인식 제고와 참여 확산을 위해서 사회적경제 차원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많은 난제들이 대기 중이다. 만 5세의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라는 졸속 정책은 여론 수렴 뒤에 취소할 수 있다고 다급히 진화하였지만, 고물가와 무역수지 적자, 재산확산 되는 코로나에 대한 과학반응 타령에 대한 실망, 밀어붙인 경찰국 신설의 여진, 용산 대통령실에 이은 한남동 대통령 공관의 공사 건 등등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발등의 불은 국외에서 더욱 심각하다. 악화하는 미·중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대로 우리의 생존 문제이다. 지난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방문으로 인한 중국의 반발과 이를 적극 옹호하는 미국 간의 갈등은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해 오던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펠로시가 타고 오는 비행기를 격추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하고, 실제로 8월 4일부터 7일까지 대만을 포위한 군사훈련을 전개하기까지 했다. 미국 역시 펠로시 의장을 무장한 관용기로 이동케 했으며 대만 체류시에는 인근에 최신예 항공모함을 3대나 출격시켰다. 미국과 중국 모두 강경 일변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나라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여론에 크게 밀리고 있는 백악관은 중국을 자극할 필요 없다며 대중 강경파인 펠로시의 대만행을 반대했지만, 결국 표를 의식해 돌아섰다. 집권 민주당보다 더욱 강경한 대중국 노선을 주장하는 공화당의 지지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동북아 평화를 저해하는 행위라며 펠로시의 행보를 맹비난했지만, 정치인에게는 평화보다 표가 중요했다. 중국 역시 가을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기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더는 대만 문제에서 밀릴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다. 이미 나토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대러시아 제재의 블록에 참여한 우리는 이미 진즉부터 중국에게 등 돌리고 있었다. 국무총리는 7월 26일 국회에서 중국 경제가 거의 '꼬라박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까지 하는 등 연이은 대중 강경 발언을 쏟아 놓고 있다. 과연 국제정치가 그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 최근의 대만 문제를 놓고 심화한 미·중 갈등의 뒤에는 일본의 외교술이 통했다고 한다. 중국을 반도체 블록으로 왕따시키는 칩(Chip)4 동맹의 구상에도 일본이 가장 적극적이다. 헌법 개정을 통해서 정식 군대를 가지고 해외로도 진출할 수 있는 과거의 군국주의 국가에 대한 희망은 암살된 아베만의 꿈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은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우리가 주변 4강의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쉽지 않지만 맞는 말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 민족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이를 의식해서인가 방한한 펠로시와의 면담을 거절했다고도 한다. 균형자 역할을 깨달았다면 다행이지만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 갈팡질팡 외교다. 휴가 동안 충분히 푹 쉬고 업무에 복귀한 대통령은 이 난제들을 통제하고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난국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이 나만의 걱정이 아니길 바란다.
2006년 5월, 북한에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협의하는 기독교계 단체와 동행하여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과장님, 불안하지 않아요?” 평양 양각도호텔 2층 식당에서 가진 아침식사시간, 일행 중 한 명인 원로 목사님이 질문을 던졌다. “왜요?” 아마도 북한의 종교정책, 6·25전쟁 때의 경험 등 평생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 온, 여든을 바라보는 노(老) 목사님께선 평양에서의 잠자리가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목사님, 여기 평양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남북간에 상대방 지역을 방문하는 인사들의 신변 안전은 물론 무사 귀환을 보장하는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북한에서 체류하는 것이 불안할 이유가 없지만,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목사님으로서는 몹시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
코로나 19가 다시 창궐할 기미를 보이지만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 계곡으로 떠나는 여름휴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공항이 붐빈다고는 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방역 절차와 외국에서 감염을 우려해 기피하는 국민들이 더 많다. 하지만 가족끼리 국내 펜션이나 호텔 등 숙박업소를 얻어 떠나는 휴가는 그나마 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붐비는 유명 해수욕장이나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농어촌으로 떠나는 휴가는 더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불법 민박이다.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운영하는 불법 농어촌민박의 경우 당연히 행정기관의 안전 점검이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이용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용객들은 이곳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잘 모른다. 농어촌민박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예약과정에..
여름 휴가로 찾은 강원도 양양의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서핑족들의 성지라는 정도는 알고 갔지만 그들이 문화를 바꿔놓은 줄은 몰랐다. 횟집이 즐비할 거리의 서핑숍과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도 낮설었느데, 밤이 되자 바닷가를 조명과 음악, 춤으로 밝힌 비치클럽 청춘들의 모습은 흡사 외국 휴양지 느낌이다. 웃통 벗은 사내들의 문신, 칵테일 잔 들고 춤추는 비키니 차림 여성들의 분방한 모습이 나의 ‘촌스러운’ 20대 기억을 소환했다. 20세기에 청춘을 보낸 내게 ‘바닷가 청춘’을 상징하는 것은 기타와 모닥불, 새우깡 안주, 그리고 단골 레퍼토리 0순위였던 연가(戀歌).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저 바다 넘어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빛도 아름답지만/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후략)’ 새우깡을 건네며 스치는 손 끝에 가슴 떨려하면서도 쓴 소주에 사랑고백을 삼켰던 것이 내 청춘의 연가였다. 그 노래가 내 나라 노래가 아닌, 뉴질랜드 전통 민요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람은 양양의 밤 문화 이상이었다. 그 노래로 인해 그저 북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복지천국, 낙농업 친환경 국가 정도로 알고 있던 뉴질랜드 역사의 그림자를 알게 됐다. ‘뉴질랜드 전통 민요’라고 할 때 전통은 무엇인가. 백인의 나라라고 인식된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1200년 이후,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마오리족이다. 마오리족의 평화는 17세기 중반, 이 땅에 발을 디딘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등을 시작으로 흔들리며 결국 제국들의 놀잇감이 됐다. 1840년, 영국은 마오리족에게 그들의 신변, 토지 소유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와이탕이 조약’으로 꼬드겨 사실상 식민지로 만든다. 이후 급증한 유럽 이민자들이 옮긴 전염병과 그들의 토지강탈에 맞서 벌인 전쟁으로 마오리족 인구는 급감하고 문화는 쇠한다. 1970년, 대영제국 내 자치령이 된 뉴질랜드는 1931년, 자치정부 수립, 1947년, 자치국 정식 인정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현재 뉴질랜드 인구는 파케하라고 부르는 유럽계 백인이 60% 이상이고 원래 땅의 주인이었던 마오리족은 15% 정도. 미국의 인디언처럼 마오리족 역시, 관광객들에게 전통춤 ‘하카’ 등 전통문화를 팔며 2등 국민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연가’라고 알고 있는 마오리족 노래 ‘포카레카레아나(Pokarekareana)’는 마오리족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북섬 로토루아 호수 근처에 살던 족장은 딸이 미천한 청년과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만나지 못하게 카누를 빼앗는다. 청년은 매일 밤 구슬프게 피리로 연가를 불렀고 그 피리 소리에 미친 딸은 청년이 사는 섬까지 헤엄쳐가 사랑을 불태웠다. 이를 알아챈 족장은 결국 그들의 결혼을 허락했다는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해피엔딩이다. 마오리족 전설을 품은 이 노래는 1914년 투모안(Tomoan)의 편곡, 마오리족 출신 가수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온다. 우리에게 흘러든 것은 한국전쟁 때 참전한 뉴질랜드군에 의해서였는데, 속설에 의하면 참전용사 중 가장 용감하게 마지막까지 싸운이들이 마오리족 출신들이었다나. 진위를 떠나 슬프게 들린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놈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지난 5월 작고한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에 나오는 구절이다. 1970년 발표된 이 시에서 오적은 재벌과 국회의원, 장성, 장차관, 고급 공무원 등을 일컫는다. 오적에 각각 개견(犬) 자를 붙인 한자 조어로 풍자의 극치를 이룬 이 담시가 실린 책은 오랫동안 불온서적이었다. 대학 시절 선배에게 복사본으로 받아 읽고는 낯섦에서 오는 충격을 가눌 길이 없었다. 미끈한 언어의 나열을 시라고 생각했던 고정 관념이 흔들렸으나 형언할 길 없는 쾌감도 있었다. 판소리를 현재화한 담시의 형식미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은 무엇보다 말을 막는 시대 탓이 컸다. 광주 학살을 통해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문제 제기적인 모든 말을 유언비어로 몰아 족쇄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말은 봄날 대나무 죽순 뾰족하게 솟듯이 여기저기서 삐져나왔다. "전두환을 ×× 죽이자", "전두환 ×새끼", "광주 원흉 대머리", "피는 피를 부른다", "네 심장에 칼을 꽂으마", "네가 죽는 그날까지".... 대학가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오가는 역이나 버스터미널 화장실은 모진 말의 향연장이었다. 추한 말은 곧 시대의 묵시록이었다. 시이자 대서사이자 아름다운 상징어였다. 추(醜)의 미학이 생성된 생생한 현장이 아니겠는가? 추함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독특하고도 뼈아픈 시대를 우리는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가둬놓은 말은 추를 통해 형장에서 양지로 걸어 나왔다. 말의 생명력은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다. 말을 막는 어떤 권력도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실증적 사례를 다름 아닌 우리가 만들었다. 사르트르가 자전적 소설 『말』에서 말한 바대로 말은 인간다움의 산물 아닌가. 그런데 말이 자유를 얻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말을 나락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평산 마을에서 쏟아내고 있는 보수 유튜버들의 말은 옮겨 적는 것 자체가 폭력일 것이다. 이들 뿐인가?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모진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프레임에 입각한 막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초라하게 느껴 질 정도다. 말의 자유가 말의 진흙탕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지금 우리의 아름다운 말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다. 말 짓눌렀던 시대에 있었던 추한 말은 말의 본래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추의 미학이란 말은 그만큼 정당하다. 그런데 말을 막지 않는, 막을 수 없는 시대에 있어 추한 말은 말의 기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자체가 추일뿐이다. 게다가 우리의 삶을 품격에서 비루함으로 이끈다. 바야흐로 우리는 말의 성찬이 고통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