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추석연휴 기간 필자 근무 관내에서 새벽시간 운동을 나온 50대 피해여성이 젊은 남성으로부터 아무런 이유없이 무차별하게 폭행을 당하여 얼굴에 심한 상처와 팔이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경찰은 발생 12시간이 되기 전 피의자를 검거하게 됐다. 세상의 범죄는 갈수록 다양해져만 가지만 범죄피해를 당하고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여 극심한 심리적 고통은 더해져만 가는 것도 현실이다. 이를 위해 제정된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범죄자 보호·지원의 기본 정책 등을 정하고 타인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피해를 받는 사람을 구조함으로써 범죄피해자의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은 있지만 정부의 법적 지원제도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필자는 조금이나마 국가에서 시행중인 범죄피해자에게 소개해줌으로써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다. 현재 검찰청의 지원 정책은 심리상담 및 치료와 보호시설 제도, 경제적 지원(구조금), 의료비 지원, 법률지원, 주거지원 등이 있으며, 각 경찰서에서는 피해자전담경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
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12년 만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다시 겪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헌법이 규정하는 탄핵소추의결, 그중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은 그 의결정족수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의결 중 하나다. 국회의원 재적의원 2/3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이 과반수나 그 언저리를 차지한 경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이다. 2004년 처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당시 집권 여당의 분열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는데, 이번 2016년 탄핵은 집권당이 사실상 분열되면서 역시 가능했다. 1988년 헌법재판소 출범이후 30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서 두 번이나 탄핵소추 의결이 있었다는 것은 집권자의 헌법수호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를 하였음에도, 실상은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4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새로운 회계연도에 대한 국정계획이 모두 있은 후였고 탄핵소추 사유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여 단기간 내에 탄핵에 대한 결정을 예상할 수 있어 사실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고 볼 수도 있
‘반드시 정의가 승리한다’는 명제가 만고의 진리라면 좋으련만, 실제 세상에서는 ‘더 지독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이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연일 뉴스에서 들리는 소식들은 권력과 대중 사이의 힘겨루기가 장기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태를 바라보면 힘은 좀 빠져도 마음을 잘 추슬러서 지치지 않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오늘은 끈기와 성실함으로 일생 작업을 해왔던 척 클로스(Chuck Close)라는 작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포토 리얼리즘(Photo-realism) 혹은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 불리는 경향의 창시자로서, 이 경향은 즉 대상의 모습을 마치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정밀하게 묘사한 작업들을 의미한다. 작가의 손을 직접적으로 많이 타는 작업들이 대부분이고, 그만큼 수많은 노동과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1950~60년대 미국에서는 캔버스 위에 형태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평면회화야 말로 회화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낸다는 의견이 두루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앤디워홀,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팝 아티스트,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이 등
유럽인 중 처음 담배를 피운 사람은 콜럼버스와 동행, 신대륙을 발견한 ‘로드리고 데 헤레스’였다. 인디언의 의식용 담배를 배워 고국 스페인으로 돌아와 공공장소에서 피우다 체포돼 7년의 옥살이도 했다. 당시 종교재판에선 ‘악마와 결탁’이란 죄목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담배에 대한 유해성을 경고한 사람 또한 콜럼버스와 동행했던 ‘바돌로뮤 드 카사’라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간파,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보급저지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 그 후 유·무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담배는 ‘신이 내린 풀’로 극찬을 받거나 ‘악마의 성찬’으로 묘사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7세기 담배 폐해가 크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으나 나라별 전매품으로 취급되면서 담배논쟁은 없었던 일이 됐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 땐 담배를 군인들의 애국심과 연계했는가 하면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상당수 국가는 지금도 담배에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담배는 ‘유일한 합법적 살인 상품’이라 낙인 찍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담배 연기에 40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으며 그 중 60여 종이 발암물질이어서다. 또 10가지 이
첫, /유현숙 눈이 온다해서 못 떠났습니다 눈은 담장을 덮고 마른 장미줄기를 덮고 유목의 대지를 덮고 나는 잠들지 못합니다 세밑입니다 누군가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오는 골목길에도 눈이 내리겠지요 양떼를 몰고 겨울바람을 건너오는 당신에게도 눈이 내리는 기미가 닿는지요 동쪽으로 난 게르의 문 앞에서 눈은 여전히 서성이고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날은 저물고 겨울바람은 불어오는데 당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동쪽으로 난 게르의 문 앞에서 그대는 눈과 함께 서성이고 있습니다. 혹여 당신이 늦게라도 올까봐 선뜻 등짐을 지고 떠나지 못합니다. 이제 세밑입니다. 그대에게도 유목의 이 쓸쓸한 발자국의 기미가 닿는지요. 눈이 더 세차게 휘몰아치기 전에 어서 양떼를 몰고 따뜻하게 불 지펴놓은 이 게르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대와 마주 앉아 따듯한 수테차이 한 잔으로 차가운 입김을 데우고, 타오르는 화목의 열기에 노곤한 몸을 기대어 긴 불면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눈이 온다 해서 떠나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인가요. /송소영 수원문학 시분과위원장·시인
인천시, 노후 산업단지 개선 정책 1970년대와 198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해 탄생했던 공업단지. 바닷길과 하늘길이 열려 있었으며 수도권내 위치해 있다는 것이 강점이었던 인천지역에도 필연적으로 국가공업단지가 들어섰고 지금은 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인천에도 부평·주안·남동공단이 차례로 들어서며 수도권의 주요한 산업축을 형성, 국가와 지역 발전을 견인했다. 그러나 2000년대 IT산업의 등장과 더불어 일부 수도권 공업지역에는 낡은 공장대신 인텔리전트 빌딩이 들어서며 인천지역의 많은 산업단지들은 자체 생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의 뿌리산업 진작책에도 불구, 현재 인천지역 산업단지마다 우수인력 부족, 불법 외국인 취업자, 내·외부 시설의 노후화, 문화시설의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시는 ‘근로자가 일하고 싶은 일터로, Let美공장’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중심, 기업중심, 근로자중심’의 세가지 산업단지 개선 정책을 통해 산단의 노후 환경을 개선하고 일하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홀대받던
증여세가 귀찮아 사망할 때 까지 재산을 가지고 있다가 사후에 자식들이 남은 재산을 나누어 갖도록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고, 주택 마련과 자녀 양육에 부담이 큰 시기에는 사전에 합리적 증여를 통해 젊은 세대가 능력을 키우고, 조기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형·무형의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하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에게 상속세율과 같은 10~50%의 증여세가 부과되는데,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증여세를 가급적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해 본다. 증여는 10년 단위로 합산해 과세하므로 장기적 계획으로 증여를 하면 증여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자녀 출생 시 2천만 원, 11살에 2천만 원, 21살에 5천만 원, 31살에 5천만 원 한다면 1억4천만 원을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다. 다만 증여할 때는 소정의 증여세가 나올 정도의 재산을 증여해 신고하는 것이 세무서에 기록을 남길 수 있어 좋다. 증여를 할 때는 현금이나 금융자산 보다는 부동산을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 토지나 건물 같은 부동산은 시가를 정확히 확정하기 어려울 때는 공시가격이나 감정평가액으로 계산해서 과세하는데 공시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내일에 상관하지 마세요!” 아들에게 사춘기가 찾아오자 말투와 말하는 내용이 싹 바뀌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혼낼 일도 별로 없고, 대화하다가 다툴 일도 없었는데 아이가 청소년이 되자 내 아이인데도 대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절망하는 순간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잘 대화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차에 듣게 된 이영숙 박사님의 성품교육 강의는 고민을 해소시켜 주는 전환점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내가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성품과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아이를 믿어주고 격려하는 것을 꾸준히 실천했다. 처음엔 아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점점 나를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뀌고 자기 의견을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청소년기 자녀와도 얼마든지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부모성품대화학교 수강자 박○숙 님) 부모를 위한 성품대화학교 강의를 진행할 때 만난 한 어머니의 소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청소년기 자녀와 대화하고 가르치는 것을 어려워한다. 마치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짐승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신처럼 청소년기
1918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우리나라에서 758만 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 이중 14만 명이 사망했다. 이른바 ‘무오년 독감’으로 인구의 38%가 끔직한 일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시작된 독감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부와 태평양 섬까지 퍼져 더 많은 피해자를 냈다. 숨진 사람만 불과 2년 새 2500만~5000만 명(일부 추정은 1억 명)에 이르렀다. 1차 대전 사망자(900만 명)의 3~5배,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 역사상 최대의 의학적 홀로코스트로 불린다. 악명을 떨친 독감 이름은 ‘스페인’이다. 상당수 나라가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독감의 피해사실을 감추었고, 중립국이던 스페인 언론이 처음 보도,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감기와 독감의 차이를 잘 몰랐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다른데도 증상이 비슷해서였다. 그래서 전쟁 중 각국에서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이 급증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결국 화를 키웠다고 한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처음 분리된 것은 1933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 가지 유형이 발견됐다. 전염속도가 빠르고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