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진홍빛 와인 색깔로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도 깊어지면 첫눈을 기다리게 된다. 첫눈은 첫사랑의 가슴 같은 설렘과 그리움의 해갈 같은 기쁨을 안고 온다. 산중에 살다 간 법정은 1 미터 가까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고 들짐승들도 얼씬하지 않을 때는 ‘글은 곧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글씨 또한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마음으로 다산(茶山) 선생의 복사된 글씨를 압핀으로 빈 벽에 붙여 놓고 보면 방안이 한결 고풍스런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흰 눈이 펄펄 내리면 종남산 아래 눈 덮인 들길을 걸어 산속 어느 집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 삶의 주변과 국가의 역사적 참사를 보면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시인이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앓아 주는 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말해왔듯 ‘문학은 종교나 정치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근래의 역사적 큰 참사요 불행한 사건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이래도 되는가 싶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버스와 승용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여 그 안에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위원장 임기가 12월 9일 종료되고 정부는 새로운 위원장 후보로 극우적 인사로 지명했다. 진화위는 과거 국가폭력으로 억울한 피해를 본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국가의 손·배상과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단체이다. 이를 위해 진화위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 시에 일어났던 다양한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등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기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신생 국가들 대부분이 수많은 국가폭력과 인권탄압에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 역시 그 피해사례로 따지면 만만치 않다. 해방 이후 냉전과 분단 그리고 이념대립으로 그리고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우리의 진화위와 비슷한 기구로 대표적인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이다. 300년 동안 흑백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한 남아공의 국가폭력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1994년 국민투표로 집권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아픈 과
모래 커피를 제대로 내려주는 곳이 홍대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에 들여온 모래 커피의 맛은 어떨까. 모래 커피의 나라, 튀르키예에서 직접 맛본 것은 텁텁하고 달아서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모래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커피를 주문 받은 주인은 주문대 옆의 테이블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300-400도로 달궈진 모래 위, 체즈베(Cezve)라는 커피 추출용 주전자를 이리저리 옮기며 데운 끝에 달걀 크기 잔에 커피를 담아내준다. 다 마신 후에는 커피점 치는 것을 도와준다. 튀르키예 미신인데 과정도 내용도 사랑스럽다. 커피 마신 잔을 엎어서 돌린 후, 잔 속에 남은 무늬를 보고 예언을 한다. 예를 들면 강아지 모양이 나오면 인기가 많아지고, 물고기 모양이 나오면 일자리를 얻거나 돈이 들어오고, 하트 모양이 나오면 사랑을 이루거나 결혼 하게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커피는, 튀르키예인의 사랑과 결혼 과정에서 관례로도 오랫동안 뿌리내렸다. 이슬람 문화권이라 자유연애가 쉽지 않았던 과거, 튀르키예에서는 신랑 어머니들이 며느리감을 찾아다녔다. 청혼 받은 신부는 상견례 때 커피를 내오는데, 커피 타는 실력으로 요리 솜씨를 짐작했다. 그 과정에서
본보는 지난 10월 27일자 사설을 통해 공동화된 옛 경기도청사 주변 지역 상인들의 어려움을 전하고 당장 상권 침체를 벗어날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상인들을 위한 단기적인 계획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도청이 광교 신도시로 이전한 후 지역 공동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11월 2일 도의회에서 경기도·도의회 주최로 열린 ‘2022 경기도 정책토론대축제 경기도청 구청사 활용 방안 토론회’에서는 기존 상권 슬럼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청이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인근 지역이 느끼는 상실감이 매우 크며 상권의 급격한 매출 감소와 부동산 가격 하락 등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팔달연합회 장금식 회장은 “도청 이전 이후 지역 공동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가 시급한 정책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도가 복합단지 조성 시점으로 밝힌 2025년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늦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기존 시설을 활용해서 지역경제에 활력을 도모할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도는 팔달산 옛 청사를 2025년까지 '경기도사회혁신복합단지'(가칭)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옛 청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와 예술가가 한 마음이 되고, 나아가서는 그와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접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는 작용을 한다. 바로 거기에 개개인과 타자의 분열로부터의 해방과 고독으로부터의 해방이 있고, 바로 이러한 개개인과 타자의 융합 속에 예술의 매력과 공적이 있다. 사상적 저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 새로운 사상을 전달할 때 비로소 사상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작품도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줄 때 비로소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두 기관 중의 하나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서로의 사상을 주고받으며 또 예술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현재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람들과도 감정을 주고받는다. 지식이 점점 완성되어 가듯, 바꿔말하면, 더욱 진실하고 더욱 필요한 지식이 그릇되고 불필요한 지식을 몰아내듯, 감정에 있어서도, 예술작품에 의해 더욱 높고 더욱 뛰어나며, 인류의 복지에 더욱 필요한 감정이, 그보다 저급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몰아낸다. 바로 거기에 예술의 사명이 있다. 에
북한은 2022년 들어 단거리 중거리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계속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한 한미합동군사연습과 국제사회 및 우리정부의 대북제재 강화 움직임에 대해 거친 언사를 동원해 비난하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공개한 ‘화성포 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유엔중심의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 국가와 우리가 나서서 북한의 주요 외화 조달처인 광물 수출과 사이버 해킹을 제한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은 김여정을 내세워 막말에 가까운 단어를 써가며 비난하는 등 원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반응은 2005년 6자회담에서 핵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했지만 비슷한 시점에 취해진 미국 재무부의 돈세탁 방지 차원의 북한 통치자금 동결 조치에 거칠게 항의하면서 6자회담 합의사항 이행을 거부하고 나섰던 사례를 연상시키고 있다. 충견 졸개 들개와 같은 김여정의 거친 표현은 2005년 당시 6자회담 북한 대표가 한 미 일 과 중 러 대표단이 함께 자리 한 6자회담장에서 했던 거친 표현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면 북한은 왜 이렇게 거칠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그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었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25년 동안 시아버지, 남편, 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같은 시기에 3대가 일심동체로 국권회복에 헌신한 집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위대함, 또는 특별함에 비추어 기록도 빈약하고 훗날 우리 정부가 그에게 내린 훈장은 너무나 초라했다. 모욕적이다. 희순은 1860년(철종 11년) 꼿꼿한 선비 윤익상의 장녀로 지금의 남산 밑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생모와 다정한 계모를 연이어 잃는 아픔을 겪는다. 열 여섯 살에 아버지의 친구인 유홍석의 아들 제원과 결혼했다. 시댁은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선비집안이었다. 한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사돈이 된거다. 스승은 위정척사(衛正斥邪) 그룹의 우두머리였던 화서 이항로였으며, 그 제자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쪽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의병을 거병했다. 제천에서 일어난 의암 유인석과 춘천의 유홍석은 6촌간이다. 1895년. 왜놈들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을미사변에 이어서 단발령이 포고되었다. 전국에서 의병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났다. 희순은 춘천지역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주축이 된 의병대를 뒤에서 도왔다. 세탁, 취사, 모금, 화약
발랄한 활약으로 언론동네 틈새 파고든 유튜버 등 ‘크리에이터’들, 놀랍다. 거칠 것 없이 제 하고 싶은 말 다 동영상에 눅여 인터넷 선반에 얹으면 신문 방송 부러울 것 없다. 황당한 ‘소리’도 하고, 일부는 돈도 잘 번단다. 언론사들도 아예 이런 세태 따라 한다. 고고학과 골동품의 세계에는 광적(狂的)인 마니아가 많다. 재미있는 분야이니 응당 크리에이터들도 많겠고, 그중엔 ‘고인돌유튜버’들 활동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고인돌 관련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지석묘가 일제 때 건너온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얘기가 근자에 있었던가 보다. 왜색(倭色), 일본풍(風) 지우자는 갸륵한 뜻으로 이를 받아들인 동조자도 꽤 된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근거 없는 낭설(浪說)이다. 일본에서도 고인돌을 지석묘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그렇다. 과문(寡聞)한 탓일지 모르나 일본말에서 支石墓라 하니, 우리는 순우리말인 ‘고인돌’을 써야 할 것이란 정도의 논리로 보인다. 일본서 젓가락으로 밥 먹으니 우리는 젓가락 쓰지 말자는 것인가? 10여 년 전 인터넷 공간에, ‘바다의 순우리말이 아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이 퍼져 한동안 유행했던 경우와도 흡사하다. 아라뱃길 아라온호(號)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