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속의 이성이 점점 강해져 번뇌가 점점 사라질수록, 그 사라지는 곳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영혼의 생활이 해방된다. 의식적으로 그 해방에 참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실수와 착오가 일어나도 실망하지 말라.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것처럼 공부가 되는 것은 없다. 그것은 자기를 교육하는 가장 방법의 하나이다. (칼라일)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 그럴 바엔 자기 자신을 바로잡아 자기완성을 향하는 길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우리의 현재 생활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이 인류에게 유산인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 도덕적인 유산이다. 우리가 행한 위대한 행위는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다. (조지 엘리엇)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의 영혼은 육체라는 관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관, 즉 우리의 육체는 서서히 허물어지는 반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 그리하여 육체가 죽었을 때 영혼은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작고 사소한 악이라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했지만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한번 저지른 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선거 캠프에 무속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논란이다. 그가 소속되었던 조직을 해산시켰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지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지 정치가 종교에 의존하거나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치와 종교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밀접한 관계였다. 자연현상의 변화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제사장의 설명은 절대적이었다. 제사장의 설명이라고 해야 천체를 관찰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서양은 유독 인격을 부여한 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대 이래로 중세까지 정치와 종교는 한 몸이었다. 유럽의 문화는 중세시대에 건축한 무수히 많은 성(城)과 교회가 대부분이다. 교회를 장식하는 조각과 회화는 모두 민중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세뇌하는 텍스트였다. 현대사회 이후로 정경분리를 내세우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기독교의 지배는 사실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큐러스는 사후세계를 강조해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신앙 행위에 대해 행복을 추구하는 데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
현대인의 불가피한 모습 중의 하나가 수면장애, 불면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성인의 40%가 정도가 겪는 불면은 삶의 급격한 변화와 고통에 대한 몸의 표현일 수 있고 또는 다양한 신체적 불편과 이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데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때는 건강의 적신호가 된다. 연일 뉴스에서는 코로나 19의 확진자 수의 증가, 백신의 부작용과 백신패스에 대한 보도로 긴장이 이어진다. 마스크를 끼는 게 더 편하고 사람 사이에도 아크릴판이 있으면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마음의 평화와도 거리두기다. 불안, 불면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이럴때일수록 잠을 잘 챙겨서 나의 든든한 지원군인 면역이 잘 기능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다. 불면환자분들에게 한약과 침 치료와 함께 호흡 명상 수면위생 등 비약물요법을 함께 진행하는 한방통합치료는 매우 효과적이다. 이러한 통합치료를 한의원에서 진행하면서 반드시 꼭 안내하는 것 중 하나가 이완요법이다. 이완요법을 (한의임상진료지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체와 정신의 이완반응을 유도하는 일종의 자기조절방법으로 교감신경의 과도한 각성을 낮추고, 질병의 원인, 발생요인, 질병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스트
텅 빈 마음도 실은 꽉 찬 마음이어서 누군가 와서 당신의 허무에 날개를 얹으리라 나비는 날개로 허공을 만질 줄 안다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중에 가장 난감할 때가 피해를 본 학생이 있는데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예를 들어 사촌이 외국에서 선물한 특이한 볼펜이 분명히 오전 수업시간에는 필통에 있었는데 점심시간 후에 없어졌다거나, 똑같은 스티커를 교실 안에 여러 명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스티커가 사라졌다거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문제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일단 다른 아이들에게 물건이 저절로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가방이나 책상 서랍, 사물함을 확인해 달라고 말한다. 이때 없어진 물건이 돌아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는 잘 없다. 아이들이 열심히 찾아도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한 피해자를 달래면서 앞으로 학교에 소중한 물건은 가져오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끝난다. 이렇게 사건이 종결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 뒤에 잃어버렸던 물건이 다른 아이에게서 발견되면 더 난감해진다. 물건을 잃어버린 A는 네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볼펜은 한국에서 팔지 않는 것이므로 본인의 것이 틀림없으니 돌려달라고 말하지만, 물건을 사용한 B는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이즈음 동네 식당에서 밥 먹다 중년 남성 몇이서 욕하는 것을 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동정하자 어떤 이가 "누가 그 일을 시켰어?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죽든 살든 해내야지!" 하고 쏘아붙였다. 그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동네 버스 정거장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 A는 동년배로 보이는 B의 짐을 들어 버스에 올려주었는데 배려받은 그가 나머지 짐마저 들어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은 A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머지 짐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B는 A에게 도와줄 바에는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무랐다. 급기야 A가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 제가 잘못입니다, 하고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 장애 사례는 과연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방역 당국의 소상공인 영업 제한에 관한 뉴스에 어떤 댓글이 주를 이루는지 들여다보자. "자영업자들에게 왜 돈을 주냐? 세금이 아깝다.", "이 기회에 저것들 망해야 한다.…
A와 B가 교실에서 무언가 훔친다고 했다. 특수학급 보조교사는 문구용품과 간식이 사라진다며 ‘범인’으로 아이들을 지목했다. 장난과 호기심에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세 번째 도적질이 보고되자 두 녀석을 불렀다. “너희들이 한 짓을 이미 알고 있다. 이실직고하면 부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겠다. 대신 교실에서 가져간 것을 낱낱이 써내라” 녀석들을 협박했다. 가정에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인지 열심히 훔친 내역들을 써내려갔다. 자백을 받아내는데 나름 효과가 있구나 하고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달장애 아이들이라 정직하고 순수했다. “아닌데. 더 있는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뭘 가져가는지 몰래 지켜봤다. 아직도 빠진 게 있으니 빠짐없이 써내라” 했다. 당황한 녀석들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적고 또 적었다. 열심히 작성한 도난품 목록에 순진하게도 ‘정수기 물’까지 등장하자 비로소 취조를 멈췄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도난품 목록을 읽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A는 책, 교구, 문구류, 간식 등 가져간 물품이 다양했다. 단지 재미로 훔친 것 같았다. 가정형편이 넉넉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가져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B가 적어낸 건 거의 ‘먹을 것’이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한 마리의 제비로는 봄을 부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봄을 느끼고 있는 첫 번째 제비가 날지 않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그처럼 온갖 꽃봉오리와 풀이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라면 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자기가 첫 번째 제비든지 아니면 천 번째 제비인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그것이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인도 자기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영원해진다. 그는 영원해짐으로써 비할 데 없이 강력해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한다. 개인의 생활이든, 사회 전반의 생활이든, 법칙은 오직 하나, 그 생활을 개선하고 싶으면 그것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냐 예속이냐 하는 인류 미래의 운명이 걸려 있는 오늘날, 이같이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병사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한 하느님 나라 군대 지휘관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죽은 사람이란, 변천하는 것에 대한 번민
참 나쁜 사람들이다. 사회적 약자를 등 처먹는 인간들이다. 불법 다단계업자들은 악한 자들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자영업자들이다. 사적 모임 인원은 4명에서 6명으로 완화됐다고 하지만 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는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가게 세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그저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기만을 바랄 뿐 달리 대책이 없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한탄이 나라에 그득하다. 그런데 이 틈을 노려 파고드는 독충 같은 인간들이 있다. 사기꾼과 높은 이자를 갈취하는 불법 사채꾼, 불법 다단계업자들이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에 따르면 불법 다단계업자들은 노년기 안정적 소득처를 찾는 고령자나 장기간 구직활동 중인 취업준비생,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고령자들에겐 실체가 없는 사업계획을 소개하며 ‘안정적인 연금수익’과 ‘자손에게 상속도 가능한 투자’라고 유인한다.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구직활동을 하는 취업준비생과 주부들을 속여 취업 합격 통보를 한 후 다단계판매원으로 가입시킨다. 피해가 심각해지자 공정거